2019년 1월 1일
"넌 꿈이 뭐야?”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에 돌아오니 아는 얼굴이 없었다. 그때까지 졸업을 하지 않고 머물고 있던 친구가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공격받는 느낌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거리기도 했다. 선뜻 대답을 고르기 어려웠다. 나는 아직 까까머리 군인 티를 못 벗었었고, 그때까지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거 말고. 진짜 꿈이 없냐고” 친구는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나는 그 친구와 자신을 자주 비교했다. 그는 또래 남학생들이 군대로 떠날 때 비슷하게 학교를 벗어났다. 광고대행사에서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거치며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오래전부터 정해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했다. 아니, 광고쟁이가 되기 위해 처음부터 그런 전공을 정해둔 것이겠다. 차근차근히 미래를 준비해온 그의 모습과 나는 많은 게 달랐다. 불안감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껴졌다. 무작정 인턴이라도 해야겠다며 언론사에 지원서를 넣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력서에 아무것도 없네요?" 그리고 늘 굴욕적인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바닥 이력서를 가득 매운 경쟁자와의 비교는 면접장을 당장 박차고 싶게 만들었다.
“난 행복해지는 게 꿈이야” 허를 찌르는 질문보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대답이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추상적인 감정을 꿈이라 말할 줄 몰랐다. 그 누가 불행하기를 바라겠는가. 하지만 그는 단언컨대 자신의 꿈은 행복이라고 당차게 주장했다. 방금 전까지 며칠 째 잠을 자지 못하면서 회사 사무실에 갇혀 있다고 했는데. 잠깐 시간을 내어 밥을 먹기 위해 만난 곳도 방을 얻은 회사 근처의 고시원 앞이었다. "아니 정말로, 난 행복해지기 위해서 카피라이터가 되는 거야. 그것 말고는 다른 의미는 없어" 그는 자신감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나는 다시 내 꿈은 무엇일까 조용히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친구가 먼저 대학을 떠났지만 나는 더 오랫동안 남겨졌다. 미래를 향해 꾸준히 전진하는 그의 모습은 질투와 시기의 연속이었다. 나는 굶주린 사람처럼 남은 학기까지 경력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쳤다. 머나먼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났고, 두 개의 언론사 인턴에 일곱 차례나 떨어지면서 인턴이 되었다. 우연히 참석했던 공모전에서도 큰 성과를 거둬 입상할 수 있었다. 그와 경쟁을 하려던 건 아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나와 비교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계속 시험에 낙방했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결국 2년의 수험생활 끝에야 어렵게 언론사 합격의 문을 닫고 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행복을 찾지는 못하고 헤맬 뿐이었다. 내 꿈은 기자가 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내 일상은 크게 바뀌었지만, 감정의 소모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마음에 온도가 있다면 우리는 보일러가 잘 돌아가기를 바란다. 노곤 노곤해질 만큼 온기를 간직하고자 달군다. 다만 행복에는 자동 온도조절장치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어릴 적부터 대학에 합격하면,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목표한 것을 이루면 쉽게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렵게 성과를 이루더라도 짧은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언제나 그 탄력성을 쉽게 회복한다. 평소에 행복을 찾지 못하는 당신의 마음 온도는 마법같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군불을 땐다. 그건 성취감이지 행복이 아니다. 그는 분명 내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백지상태의 나에게 그의 당찬 매력은 가장 좋은 자극제였다. 하지만 남의 삶을 비교하느라 찾지 못한 나의 의미에는 맞지 않는 비교 대상이었다. 그날 내게 대답할 시간을 더 준다고 해도 나는 기자, PD, 아나운서처럼 내가 고를 수 있는 직업의 한 가지를 댔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의 한 가지였을 뿐이었다. 마음은 다시 평소의 그대로 싸늘해진 것이다.
어느 수능 강사가 학생들에게 ‘꿈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갖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가끔 내가 그토록 쫓던 목표가 뭐였는지 아득해질 때가 있다. 내 삶이 아등바등해질 때면 자신만만하던 그 친구가 생각난다. 언제부터 나의 인생에서 일이 최우선 순위가 되었는지. ‘방송 잘 보고 있어’라는 주변 사람들의 연락을 받으면 허탈한 웃음이 먼저 나왔다. 내 꿈은 정말로 여기서 그쳤던가. 문제를 먼저 푼 친구의 답을 또 살펴본다. 그는 나보다 먼저 사회로 떠난 뒤에 결국 멋진 카피라이터가 됐다. 하지만 그는 직업 명사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기업에 다녔지만 몇 년 만에 과감히 뛰쳐나온 것이다. 그리고 매우 일찍 결혼을 해서 나를 다시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다른 신혼부부처럼 아이를 갖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자신이 직접 차린 회사의 대표로 당차게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의 선택은 여전히 멋지고 존중받을만하다. 가장 중요한 건 그래서 그가 행복을 찾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꿈을 좇는 삶에 충실한 건 분명해 보인다. 나도 내 정답을 적어 낼 때다.
내 마음이 행복의 온기를 잘 간직할 수 있도록 더 뜨겁게 달구고 싶다. 언제라도 다시 따뜻한 온도를 가리킬 수 있도록. 불쑥불쑥 찾아오는 크고 작은 행복들을 고스란히 다 받아들여야지. 그건 누군가와 비교해서 찾을 수 없는 나만의 것이니깐. 더 당찬 사람이 돼야겠다. 나는 바라던 대로 기자라는 명사를 품고 다시 동사의 꿈을 꾼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