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월급만으론 안 된다? 난 다르게 살기로 했다.

1-1. 대기업 직장인, 하지만 불안했던 이유

by 작심 유니버스

1-1. 대기업 직장인, 하지만 불안했던 이유


행정고시 실패, 그리고 끝없는 고민


금융권에서 일할 계획은 없었다. 대학 시절,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행정고시 합격. 대한민국 최고의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대학 생활을 보냈다. 도서관이 집보다 익숙했고, 공부하는 것 외에는 모든 걸 포기했다. 심지어 흔한 해외여행도 포기했다. 필자는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 해외여행이란 걸 해본다. 포기한 걸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몇 년을 바쳐도 성과는 없었다. 마지막 시험에서도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후 1년에 350일 정도를 술독에 빠져지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계획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 목표를 잃은 순간,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함께 사라졌다. 주변에서는 다양한 길을 제시했다. 기업 취업, 로스쿨, 공기업 준비 등 많은 조언이 쏟아졌지만 아무것도 와닿지 않았다. 혼란 속에서 선택한 길은 대학원 진학이었다. K대 일반대학원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어쩌면 대학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학부 시절 전공 공부는 행정고시 과목에 맞춰져 있었고, 이론적인 경제학 수업은 완전히 다른 영역처럼 느껴졌다. 교수님들의 강의는 외계어 같았고, 주변 동기들은 이미 탄탄한 지식을 갖춘 상태였다.


매일 새벽까지 책을 붙잡고 씨름했지만, 남는 게 없었다. 문제를 풀어도 개념이 잡히지 않았고, 논문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이 길이 맞을까?"


머릿속에서 끝없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안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냥 버텼다.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열심히 하면 따라잡을 수 있겠지. 그러나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졸업조차 자신이 없었다. 용기내 어 지도를 부탁하려 교수님께 찾아갔는데, 내준 문제를 풀지 못했다. 랩에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점점 스스로가 초라해졌고, 무력감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곳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석사 수료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군대로 향했다.



27살, 장교로 복무하며 현실을 잊었다


도망쳤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임관 후 군 생활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행정고시의 실패도, 대학원의 좌절도 생각할 겨를 없이 눈앞의 업무에 몰두했다.

군대는 명확한 조직이었다. 상관의 지시를 따르고,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면 됐다. 모호한 미래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으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고민 없이 사는 삶도 나쁘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군 복무가 끝나갈 무렵, 다시 현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제대하면 뭐 하지?"

주어진 길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사회로 나간다는 것이 두려웠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취업은 쉽지 않았다.

미친 듯이 원서를 냈다. 78번 지원, 20번의 면접, 1번의 계약직 근무.

하루에도 수십 통씩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장에서 숱한 질문을 받았다.

"왜 대학원을 중퇴했나요?"
"행정고시를 준비했는데, 왜 공무원이 되지 않았나요?"
"이제 와서 금융권에 지원하는 이유가 뭔가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으니까.

어렵게, 정말 어렵게 금융사에 입사했다.

32살, 대기업 인턴으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기업 직장인, 하지만 불안했던 이유


운 좋게 정규직 전환에 성공했다. 인턴직 5개월 근무를 한 후 정규직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겠구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에서 일하며, 연봉도 괜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입사초반 회사생활이 녹록치 않았다. 그럼에도 월급이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안정감, 명함을 내밀 때 느껴지는 자부심, 그리고 대기업 직원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묘한 만족감까지. 직장인으로서 ‘이 정도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메뉴판의 가격비교 없이 식사를 하고, 주말에는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계절마다 여행을 다니며,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삶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의 그 만족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달 월급이 들어왔지만, 학자금 대출 상환과 생활비를 빼고 나면 통장에 남는 돈은 많지 않았다. 연봉이 올라도 지출도 함께 늘어났고, 생각했던 만큼의 경제적 자유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과연 이 직장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는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정작 그 경험과 스킬이 회사 밖에서도 통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조직이 정해준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창출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정규직 전환 1년 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사모펀드에 회사가 팔렸다는 것이다. 그 이후 고연차 직원들의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는 다른 대기업과 달리 희망퇴직 한번도 받지 않고,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회사라고 정평이 나있었다.


"우리 회사가 사모펀드에 매각된다고?"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대기업 계열사였고, 업계에서도 안정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던 곳이었다. 사내 분위기는 빠르게 뒤숭숭해졌고, 곳곳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리스트에 올라간 사람 있다고 하더라."
"희망퇴직 신청자 받기 시작했대."

‘정리해고’라는 단어 대신 ‘희망퇴직’이라는 포장된 표현이 쓰였지만, 본질은 같았다.

S급 고과를 받던 한 과장님도 회사를 떠나라는 압박이 있었고, 사표를 제출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무실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매일 누군가 짐을 싸서 떠났다.


그 일을 안 순간, 머릿속에도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만족스럽다고 믿었던 삶이 사실은 회사라는 울타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불안을 해결하지 않는 한, 아무리 연봉이 오르고 직급이 올라가도 결국 똑같은 고민을 반복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 사모펀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언제든 인력을 줄일 수 있다.
✅ 정리해고가 아니더라도, 조직이 바뀌면 내 위치는 불안정하다.
✅ 같은 회사에 다녀도, 내 미래는 내 손에 달려 있었다.

그동안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안정성을 보장해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회사는 언제든 매각될 수 있고, 조직이 바뀌면 내 자리도 흔들릴 수 있었다.

� "월급쟁이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그날 이후,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방법을 찾기 위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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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대기업 금융사 직장인, 샐러던트, 경제학 석사, 금융 강사, 두 아이의 아빠, 한 여인의 남편. 여러 정체성을 지닌 작심유니버스입니다. 직장인으로서의 고뇌를 정리하고, 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합니다. 관심 분야는 주니어급 취업 및 경력관리, 자기 계발, 경제학 공부, 부동산 재테크, ETF 투자 등입니다. 이제, 변화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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