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Nov 13. 2024

아빠에게 걸려오는 전화

늦은 저녁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이 시간에 왠 전화지 생각하며 핸드폰을 확인한다. 화면에는 "아빠"라고 떠있다.  나는 곧바로 "아빠~~~~" 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늦은 저녁 걸려오는 아빠의 전화에는 술기운이 가득하다.  당연하게도 아빠의 목소리만 들어도 오늘은 아빠가 술을 드셨구나 알아챌 수 있다.



아주 가끔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늦은 저녁 가끔 걸려오다가 어떤 날에는 한참 동안 오지 않는다. 술 마시고 전화하는 아빠가 싫을 만도 한데, 아빠가 내게 전화를 거는 날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날이라 그마저도 참 반갑다.




옛날 사람인 아빠는 좋은 것을 좋다, 싫은 것을 싫다 표현하지 못하고 내면에 감추기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식인 우리를 참 예뻐했지만 사는데 바빴던 아빠는 우리와 놀아주기보다는 출근하는 날이 더 많았다. 대신 가장의 역할은 확실하게 하셨다.



평소에 무뚝뚝한 아빠는 그래서 그런지 술을 한잔 하기 전까지는 과묵 그 자체인 아빠인데, 술을 마시면 딴 사람이 된다. 어릴 때는 그 모습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부모가 되어서 보는 아빠는 왠지 안쓰럽고 안타깝다.










지난여름 아빠는 어깨를 수술하셨다. 이주 넘게 수술과 회복으로 병원에 계셨는데 그 긴 기간 동안 나는 찾아뵙지 못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겨우 안부 전화만 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만 타면 금방 닿는 곳인데 왜 이렇게 그곳이 멀고도 먼지 모르겠다.





요즘은 가을이라 한창 바쁜 부모님이셨다. 언젠가부터 취미로 시작한 밭농사는 점점 규모가 커져갔기 때문이다. 어느새 고구마를 조금 더 많이 심어서 주위에 나눠주고 그것도 모자라 조금은 팔기도 했다고 했다. 이번 농사의 거의 마지막 작물은 깨였다. 들깨를 얼마나 많이 심으셨는지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어마어마하게 많았을 것 같다.




그전 주말 하루 날을 잡고 두 분이 깨를 털고 또 터셨다고 하셨다. 그러다 당일에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하다가 말고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다음날도 한참을 깨를 털고 또 털은 후에야 모두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 엄마의 전화통화가 기억난다. 너무 힘들어서 일어날 힘도 없다고 하셨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 아빠의 수술하신 어깨가.

"아빠 어깨는 괜찮으신 거야????"



참으로 걱정되었다. 이틀을 내내 깨를 터느라 , 가을에는 그 밭농사의 다양한 결실을 거두느라 쉬지 못하는 부모님이, 분명 재미로 한다고 하는 밭농사였는데 점점 커져가는 규모는 어찌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가까이 있었으면 도와드릴 수 있었을까? 농사라면 관심도 없고 심지어 잔디 깎는 것조차 질색인 내가 과연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아빠 병원 병문안은커녕, 농사도 도와드릴 수 없고, 친정도 가고 싶을 때 못 가는 나는 가끔 서러워진다.









친정에 다녀온 지 거의 두 달이 지났다. 올해는 1월 설날에 한번, 7월에 우연히 한번 그리고 9월 추석에 만났다. 명절에도 7월에도 스쳐가듯 봐서 아쉬웠다. 명절에는 친정 말고 시댁도 가야 하고 했으니...



어제 아빠 전화를 받고 나니 친정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친정에 가면 딱히 뭘 하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주로 안마의자에 누워계시는 아빠를 바라보고, 우리가 가면 놀러 오는 오빠가족... 그마저도 가끔 봐서 그런지 너무도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다음번 친정행은 아마도 두 달 후인 내년 설날이나 될듯하다. 그래도 육지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번, 그러니까 일 년에 열 번은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제주에 오니 많아야 겨우 명절뿐이다. 







아빠에게 전화가 오면 올수록 내가 친정에 거는 전화가 잦아지면 잦아질수록 집에 가고 싶다.

물론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우리 집이지만 마음속 내 집은 여전히 아빠엄마와 어릴 때부터 함께 살던 집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다. 오늘은 친정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날이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바람이 많이 불면 비행기가 뜰 수 없을 때도 있다. 차라리 다행이다. 어차피 친정에 갈 수 없는 날이니까...  



늦은 가을 친정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간 김에  김장이라도 도와드리면 더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