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보통의 여자라면 한 번씩 다 걸린다는 병에 걸려있었다. 그 병이란 예쁘고 값비싼 가방을 사고 싶어 안달이 난 병이었다. 가방은 가방인데 'bag'이라고 불리는 그것에 대해 단단히 매혹되어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내 수준에 맞지 않는 명품가방을 꽤 많이 샀었다. 그때도 비쌌고 지금 생각해도값비싸서 내 수준에 전혀 맞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사들였던 그 고급 가방을 들고 어디 갈 데도 딱히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가방만 있으면, 그 가방만 들면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 나의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그때는 가방이 가져다주는 우월감이 있었다. 그러니 가방이 곧 나다라는이상한 의식에 사로잡혀갖고 살아가고 있었을 테다.물론지금은 그게 잘못된 것인지,그것이 전부가 아닌지 알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암튼 그 당시 참 많은 가방을 샀다. 몸은 하나인데 가방은 몇 개였던지... 가방이 충분한데도 돈이 생기는 대로 늘 욕심내어 가방을 샀다. 그리고 그때 산 가방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마음먹은 이후에는 이것저것 참 정리를 많이 했다. 그런데 가방은 거의 정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산 가격에 비해 굉장히 저렴하게 판매해야 하는데 그러면 남는 것도 없고, 내게는 아직 가방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 (더 이상 새로 사지는 않더라도) 가지고 있는 가방을 꼭 그렇게 팔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에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보내고 싶었던 가방이 있었다. 제주에 오기 직전인 몇 년 전그 가방을 팔려다가 사기를 당할뻔했다. 아마 그때 팔았다면 지금보다 돈은 더 받았을 테지만 아마 사기를 당했을 것이다(그러니 0원)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나는 사기를 당하지 않았고 결국 그 가방은 내게 남겨졌다.
그 후 제주로 이사 오면서 그 가방을 들일이 없을 것 같아서 친정에 잘 모셔 두고 왔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는 물건을 계속 줄이게 되며가끔 새로운 무엇인가 사고 싶어 꿈틀거릴 때가 있었다. 결국 새로운 가방은 사지 못하고 친정에 두고 온 것들을 하나씩 가져오는 지경에 이르렀다.새로운 가방이 갖고 싶었던 어느 날, 제주에 오는 엄마에게 그 가방을 가져와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어느 날 정말로 엄마는 가방을 제주에 들고 오셨고 나는 그 가방을 다시 만났다. 멀리서 온만큼 매일 같이 잘 들고 다니면 좋았겠지만,또다시옷장에 잘 보관하기에 이르렀다. 벌써 구매한 지 9년 정도 되어가는 가방인데 제대로 든 기억이 두세 번 정도는 되었을까? 어느새 들었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 후로 옷장을 열 때마다 그 가방이 눈에 밟혔다. 컬러는 진회색이라 봄 여름에는 들기가 어려웠고 가을, 겨울에 들면 딱 좋을 컬러였다. 봄 여름엔 들지 않고 가을이 되면 이라고 미뤘고 어느새 정말로 가을이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볼까 하면서 옷장을 뒤적였다. 그리고 가방을 꺼냈는데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몇년동안 그 가방의 브랜드의 가격이 급등했다.그래서 더 이상 그 브랜드의 가방을 다시 살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상승했다.하여 이왕 이렇게 오랫동안 간직한 김에 더 갖고 있어 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더이상 내 인생 언제라도 다시 들 것 같은 가방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나는 가방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수년 전 보낼 때보다 가방은 조금 더 낡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보관만 했던 세월도 새 가방을 헌 가방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먼저 가방의 사진을 이리저리 찍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성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정말 오랜만에 당근 플랫폼에 접속했다. 하필 영수증과 박스등의 부속품이없는 상태라 저렴하게 올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용한 횟수는 적지만 보관된 기간을 생각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히 올렸다. 그리고 값비싼 가방이니 직거래로 거래를 하겠다고 적어놓았다.
'누가 이걸 살까?'
몇 명에게 채팅이 왔다. 그리고 관심하트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었다. 채팅은 여러 명과 했는데 구매 시기를 물어보는 사람과 갖고 싶은데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는 사람, 어떤 사람은 가격을 정해서 그 가격으로 주려거든 연락하라고 했다. 예상한 대로 다양한 채팅이 왔었다. 그래도 중고 플랫폼에서 보기엔 값비싼 가격이라 다들 고민 중인 듯했다.
후로도 채팅이 오는데 딱히 살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 명과의 채팅을 마친 후 가방에 대해 궁금해하던 내용을 더 자세히 추가했다. 그리고 꼭 사 실 분만 연락해 달라고도 적어놓았다. 더 이상 채팅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 후에는 잠시 가방에 대한 안부를 묻는 채팅은 잠잠했다.
며칠정도 올려놓았는데 구매하려는 사람이 없기에 약간의 포기도 했었다. 그동안 갖고 있던 정이 있는데 그냥 계속 갖고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내가 영원히 이 가방을 품어야 한다면 그냥 그러리라. 앞으로 이 가방을 보면서 물건을 함부로 사면 안된다는 소유의 고통을 영원히 느끼며 살리라' 하는 마음도 먹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구매자가 나타났다. 자고로 중고플랫폼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정말로 구매하려는 사람은 묻고 따지지 않고 거래한다'
그는 서귀포시에 살고 있었다. 서귀포에서 제주시는 적게는 30분 많게는 한 시간 정도의 거리가 있다. 그곳에서 구매하러 오신다고 하셨다. 다음날 오신다고 하는데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 시간을 정했다. 집 주소를 바로 알려줄까 하다가 안 올 수도 있으니 인근의 큰 건물을 알려주고 그쪽까지 오라고 했다. 그리고 출발하실 때 정확한 주소를 알려준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은 이전 중고 판매의 경험에 의한 것으로 원치 않았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근데 정말로 출발하신다고 했다. 결국 집 주소를 알려드렸다. 서귀포에서 제주시라니 무려 50분 정도를 달려오셨다. '아, 정말로 가방을 구매할 수 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마음을 버리지는 않았다. 워낙 큰 금액의 거래이니 오늘 판매하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속된 시간에 고급 세단이 도착했다. 우아해 보이는 중년의 부인이 내리셨다. 일단 멀리서 오셨으니 따뜻한 차를 내어 드렸다. 그리고 가방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수년 전 이 가방을 판매하다 사기당할뻔한 적이 있어서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이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말로 구매하길 원하셨다. 그리고 멀리서 오신 만큼 가격조정도 원했다. 나도 이왕 판매하려고 한 거니 가격을 맞춰서 판매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내 통장으로 돈이 입금되었다. 당근 경력 몇 년 만에 처음 보는 큰 금액의 숫자였다. 정말로 팔렸다!!! 그 돈은 그동안 당근 플랫폼에 판매했던 가격을 다 합치고도 남을 정도로 비싼 금액이었다.
혹시나 해서 끝까지 말씀드렸다. "가져가신 후 환불은 절대 안 되니 여기서 자세히 살펴보시고 가져가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핸드폰 번호를 받아가셨다.
어쨌든 성공이야!
가방을 판매하고 난 후 며칠 동안을 그 돈을 확인했다. '진짜 팔린 거 맞아?' 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가방을 사가신 분께 다시 연락이 올까 봐 마음을 졸이고 졸였다. 그리고 여태껏 다른 연락은 오지 않았다.
사실 아직까지도 거짓말 같다. 그런데 열흘정도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정말로 팔린 게 맞다.
가방은 판 금액은 따로 폴더를 만들어 모아두었다. 왠지 다른 돈과 합쳐버리면 그 가방에 대한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다신 물건을 사서 오래도록 보관만 해두는 이런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까 일부러 따로 남겨두었다.
물건을 사는 것은 쉬었지만 물건을 판매하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가방을 살 때는 정말로 비싸게 샀는데 그 마지막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었다. 물론 지금도 가방이 싫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다시 이런 실수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은행 계좌 한 곳에 모아둔 그 돈을 볼 때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가방을 갖고 있었을 때의 기쁨과 후회 걱정... 등등의 기분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