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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스토리텔링 Dec 24. 2022

시절 인연 시절 기억들

12월을 달리는 버크 공원의 기차역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어 다 좋지만 한 해의 끝인 12월은 유난히 편안하고 따뜻하다. 종교는 없지만 크리스마스가 주는 정겨움 그리고 새로 올 시간에 대한 설레임 때문이다. 12월 25일은 실제로 예수가 탄생한 날이어서가 아니라 로마 달력에서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이고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었기 때문에 고대 로마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고 한다. 어둠을 두려워했던 고대 서양인들에게이날은 밝은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해의 날이었던 것이다. 태양이 상징하는 밝음은 물리적이던 정신적이던 늘 유쾌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어 참 좋다.   


이 계절 덕분에 요즘엔 자전거나 달리기를 하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엔 오렌지 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자주 보게 된다. 오늘도 늦은 12월의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으며 온 동네를 고요히 감싸 앉았고 거리를 내달아치는 자동차의 불빛들만 이유도 없이 바쁘다. 붉게 물든 하늘과 대비를 이뤄 앙상하게 검어져 버린 나무들과 집들의 그림 같은 모습에 마음이 일렁인다. 무언가 절박하게 그립다. 


도대체 무엇이…
 ‘한국’이… 
 ‘한국’의 무엇이…


어릴 적 엄마손에 매달려 강원도 어느 숲 속 길을 걸으며 풀과 나무와 새들에게 이름을 붙이며
즐거워했던 기억,
때로는 야단을 맞아가며 아버지에게 자전거와 스케이트를 배웠던 기억,
이젠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어릴 적 친구들, 

지질함으로 질퍽거렸던 서울 도심의 인연들.


머 그런 것들이다. 
너무나 평범해서 그리움이 되리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 되돌아간다 한들 이젠 다시는 같이 할 수 없고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할 삶의 과정들, 그러기에 더 그립고 아름다운 시절인연과 기억들이다. 이민자의 삶이란 게 그렇다. 삶의 시작이었던 모국을 떠나 산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누구든 품고 있는 아련한 인연과 기억들을 유난스레 그리워하고 그래서 가끔씩은 마음을 잃고 하릴없이 서성이는 것. 

달리기 하다 만나는 늦은 12월의 석양


영하의 날씨로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달려간 버크 공원엔 크리스마스 원더랜드가 생겼다. 동화 속의 헨델과 그레텔의 집처럼 공원의 헛간은 그림이 그려진 천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화로 앞에 모여 앉은 아이들은 긴 작대기에 마시멜로를 꽂아 까맣게 태우며 깔깔거린다. 공원 속 기차역에선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흘러나오고 뿌웅-하고 멈춰서는 빨간색 기차 안에서 산타 모자를 쓴 아이들과 어른들이 쏟아져 나온다.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만은 포근하고 따뜻하다. 


훗날 이 삶을 다하고 떠날 때쯤이면 또 다른 그리움으로 기억될 이 공원의 나무와 풀 그리고 새들, 이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쿠키를 구어 나누어 주는 따뜻한 이웃들, 자라온 문화와 언어는 서로 달라도 무언의 지지와 신뢰가 관계의 중심에 놓여있는 직장동료와 상사들 그리고 사랑하는 내 가족들. 


인간 삶의 궁극적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이젠 여기가 내 삶의 종착역임을 안다. 
그 깨달음에 감사하다. 


글과 책을 사랑하는 모든 해외 이민자와 브런치작가들에게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쓰기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공원의 크리스마스 원더랜드에서 화로에 마시멜로를 굽는 꼬마들
들어가 보았더니 흙이 깔린 조그만 깡통에 겨울 지렁이와 벌레를 담아놓고 꼬마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준다 ^^
공원 속 기찻길 옆 크리스마스트리와 선물 박스
버크 공원 속 기차역
크리스마스 캐롤을 뿡뿡 울리며 공원 속을 달리는 기차
추운 날씨도 아랑곳 않고 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예쁘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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