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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스토리텔링 Sep 02. 2023

꿈은 이루어진다

79 달리기 꿈 프로젝트

가끔씩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한다.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오십 중반이 되어 육십을 향하는 나이는 죽음이라는 삶의 종착역이 꽤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나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십 년이나 이십 년쯤 후에 노화로 건강을 잃고 가족에게 짐이 되는 사는 삶을 산다면 그것만큼 비참하고 불행한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설사 건강을 잃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는 게 너무 권태롭고 지루해질 만큼 오래 산다면 그것도 불행할 것 같다.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딱히 어떻게 말할 순 없지만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 내가 선 자리를 재정립해가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것이 중년인 것 같다. 과거 그렇게 열망했던 꿈과 가치, 인생관 자체가 커다란 획을 긋고 대변환을 시도하는 시간. 과거엔, 적어도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에 꽤 집착했다. 결혼하면서 남편과 조그만 IT회사를 만들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다 털어먹고 망하게 되면서 비참한 상황을 맞았음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마음 졸이며 여기저기 열심히도 뛰어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무래도 사업으로 부자가 될 팔자는 아닌 듯 팔자에 없는 허망한 꿈엔 매달리지 말자는 자각이 왔다. 중년의 나이가 준 선물이다. 선물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능력과 운의 한계로 실패를 인정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긍정적으로 말하고 싶다. 


실패한 꿈에 쏟아부었던 젊은 날의 욕망을 버리고 나니 새로운 중년의 꿈이 생겼다. 대충 어림잡아 80이 현대인의 평균 수명이니까 그때까지 살게 된다면 79살에 풀마라톤을 달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 꿈도 사실은 망해버린 회사에 걸었던 기대만큼이나 꽤나 비현실적인데 그래도 이젠 돈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은 버렸으니 우주를 운행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가 예쁘게 봐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79 달리기 꿈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주 그 계획이 흔들거린다는 거다. 오늘은 토요일, 동네 버크 공원까지 13마일을 달리는 날이다. 그런데 새벽 1시까지 디아블로 4를 플레이하다 보니 너무 피곤해 아침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게임도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 데 이젠 그마저 옛날 같지 않다. 당장 오늘의 꿈은 얼른 디아블로 내 원소술사캐릭터를 레벨 100까지 올리고 지금은 86 레벨이다. 좋아하는 S & A 티어 던젼들을 100 레벨까지 깨는 거다. 하하.. 철없는 소리같지만 게임 좋아하는 겜머들은 다 이해할 거라 믿음. ^^;; 그래도 억지로 눈을 뜨고 달릴까 말까, 달릴까 말까..... 오분 간..... 심연의 갈등..... 을 했다. 그런데 그 오분 사이 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열 가지도 넘게 생각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체력이 안 따라 준다는 등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쓸데없이 돈도 안 나오는 뜀박질로 스스로를 고문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등.. 이건 남편이 하는 말인데 솔직히 가끔씩 설득당한다, 얼마 전부터 오른쪽 무릎이 찌릿찌릿 아픈 것 같다는 등등….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우씨 ~달리자!


침대에서 얼른 일어나 운동복부터 입고 일층으로 내려와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었다. 먼저 선블락을 발랐다. 콧속으로 스미는 선크림의 미미한 화학적 냄새에서 이제 내 몸은 달릴 준비가 됐다는 신호가 오면 더 이상은 달리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버크공원까지 13.71마일을 달렸다. 70도(화씨)가 채 안 되는 시원한 날씨와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사납지 않게 내리쬐는 늦 8월의 아침 햇살, 산들바람을 타고 찌르르 찌르르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기분 좋은 느낌. 달리기 싫은 마음을 이기고 역시 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토요일과는 달리 버크 공원엔 사람도 차도 많았다. 호숫가에 내려오자 거기에도 사람들이 북적였고 호수 위엔 거위들이 유유히 유영하고 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어떤 남자가 아이에게 물속의 거위를 가리키며 무언가 말을 하는 데 한국말이다. 한국사람이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했더니 네네 하면서 밝게 웃는다.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트레일속 야외 음악당으로 달려오니 어린이를 위한 신나는 음악캠프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사람과 차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꼬마들 사이에 끼어 벤치에 앉아 두손을 어깨 위로 올리고 어깨를 으쓱이며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따라 했다. 달리기 싫었던 마음을 떨쳐내고 달려와 즐길 수 있었던 이벤트에 마음이 뿌듯하고 즐거웠다. 달리면서 쓰고 싶은 글들에 대한 아이디어도 떠올라 간간히 서서 셀폰에 기록을 하기도 했다. 


주문을 외웠다-- 79 달리기 꿈은 이루어진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2023년 8월 19일 아침의 버크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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