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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스토리텔링 Sep 22. 2023

브런치 조회수 십만뷰의 허상

브런치스토리의 비애

글쓰기로 작가가 된다면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일주일 정도(?)한 적이 있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초기에 올린 글 하나가 다음에 노출되면서 십만 조회수를 칠 때였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SNS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성향 때문에 사실 그 당시에는 다음이 뭐였는지 또 그 사이트를 카카오에서 운영하는지도 몰랐다. 미국에서는 한국이민자들 말고는 카카오를 잘 모르고 페이스북처럼 추천 이웃 그런 거 올라오는 게 성가시러 나도 카톡을 안 쓴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이젠 한국에는 굳이 카톡을 깔아가면서까지 연락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런치를 하다 보면 카카오톡, 카카오 택시, 카카오 머니 등등..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에 탈이 생겨 혹은 이민자들이 그런 걸 모르고 한국을 방문했다가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읽곤 한다. 비판하는 건 아니고 카카오라는 단일 회사가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인프라에 올인하는 한국의 디지털 소비문화가 건강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옛부터 계란 한 줄을 한 바구니에 다 담는 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말하다 보니 그렇게 회의적이면서 여전히 카카오가 제공하는 브런치를 드나드는 나도 좀 이중적이긴 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브런치 외엔 다른 SNS을 하지 않기 때문인데 부유하고 매력적인 사람만 사는 페북이나 인스타의 세상이 현실 같지 않고 무엇보다도 예민한 개인정보를 공개했다가 범죄의 타격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인종과 이념 혹은 종교와 정치 같은 계층 간의 갈등이 깊어지면 한 사회가 진짜로 붕괴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어쨌거나 다음에서 글이 내려간 다음에야 브런치 글들을 읽으면서 아! 못난 내 글이 다음이라는 포탈에 올라갔었구나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내 글솜씨가 좋아서…’라는 착각에 빠져 며칠간 참 행복했었고 혹시 나중에 퇴직하면 글쟁이로..라는 환상을 꿈꾸기도 했다. 그리곤 십만 조회수가 올라갔지만 좋아요를 눌러준 사람은 겨우 육십 명 정도뿐이라는 걸 알고 ‘그럼 그렇지, 쩝-- 글을 잘 써서가 아님..’ 하며 비정한 현실을 뼈아파(?) 했다. 우연히 다음 메인에 올라왔으니까 그냥 클릭을 해본 거거나 혹은 나머지 구만구천 구백 사십 명은 ‘에--이 글은 별로—’라고 시큰둥한 걸 조회수만 보고 ‘내가 글을 잘 써서…’로 착각했다. 그땐 댓글을 막아나 ‘별로예요’하는 글 안 달린 게 그나마 감사하다. 지금 생각해도 글에는 1도 관심 없는 가족들에게 또 한글도 모르는 미국 친구에게 브런치에 들어가 보라고 자랑한 게 조금 부끄러움. ^^;;  


라스베가스를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잭팟이 한 번은 꼭 터진다고 한다. 도박업계의 영업전략으로 한 번 온 사람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라는 데 도박에 빠졌다 한때 노숙생활까지 했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라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일과 외에 혹은 주말 여유시간에 피시로만 접속해 브런치를 하되 한 시간이상은 떠돌지 말자는 내 나름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는데 껍데기뿐이었던 십만뷰의 홍역이 달달하지 않았고 스마트 폰과 SNS중독이 약물이나 알코올중독만큼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걱정이 지나쳐 병이 되려나. 그러나 SNS 뿐만 아니라 브런치스토리 안 한다고 죽는 거 아니다. 아프고 슬프면 아프고 슬픈 대로 기쁘고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나를 대면하며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만큼 날 죽고살게하는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온갖 미디어가 토해내는 세상의 소음에 거리를 두고 가끔씩은 외롭고 고독한 늑대가 되어 끊임없이 내면을 돌아보며 나를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이젠 브런치 특유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게 되면서 구독자나 조회수는 그저 의미 없는 숫자일 뿐 글의 역량과는 별 관계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청각을 자극하는 인플루언서 유투버가 인기직업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SNS를 통해 나만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시대지만 그래도 글 쓰는 사람들은 아직은 좀 덜 영악하다는 믿음이 있다. 글투는 어눌하고 투박해도 진심이 우러난 좋은 글은 결국 독자가 다 알아준다는 원론적 믿음이다. 반짝이는 메인 조명발을 의식하거나 내외부적 자만이나 자랑 혹은 열등감으로 버석거리지 않아 진솔함이 느껴지는 글들에 오늘도 사심 없이 클릭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수용하고 이겨내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요란하지 않은 이야기가 잔잔한 여운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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