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름이 절정을 지나 이제는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느껴진다. 올여름은 유독 더웠다. 필자의 최근 기억에 생생한 2018년과 비견될 정도로 말이다. 아, 그렇지만, 올해와 2018년을 비교하면 예전이 더 더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올해 더웠어도, 밤에 '30'도를 넘는 일은 못 봤던 거 같은데, 그땐 한 밤중에도 '30'도를 넘겨 거실에서 선풍기를 틀고 잘 수가 없던 기억이 생생하다.
올여름엔 유난히 필자가 '견뎌 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았다.
5월만 해도, '주식 천재' 소리를 들으며 야수의 심장으로 투자에 성공해 내년 해외주식 양도소득세까지 내야 할 판이라, 나름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약 두 달 전인 7월, 자만한 나머지, 연금 저축 펀드, ISA, 개별 종목 투자까지 모두 한 섹터에 '몰빵'하는 우를 범해 현재까지도 밤 열 시 반이 되면 초조한 마음으로 토스증권을 켜며 '오늘도 파란색?' '오늘은 좀 회복되나?' 하면서 속앓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뭐, 누칼협 아니겠는가, "누가 칼 들고 주식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어쩌겠나, 내가 책임져야지. 작년의 첫 주식 투자와는 다르게, 이번만큼은 어떻게 서든 투자금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존버'를 선택하기로 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올해는 왜 이렇게 일이 많고 이슈가 많은지 잘 모르겠다. 처음엔 '강제 레벨업 하니까 좋은데?' 하는 마인드로 다가섰지만, 고객사의 선 넘는 요구사항이나 '맡겨놓은 듯한' 업무 지시를 받을 때 현타를 세게 맞고 있다. 아, 물론 고객사는 그럴 권리가 있다. 나를 배려해 줄 의무는 없다. 내가 받고 그걸 어떻게든 막아 세우고 돌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보니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많고, 요새는 내가 IT회사에 다니는 건지, 콜센터에 취업한 건지 모를 정도로 비 본질적 업무를 하느라 두통이 심하게 올 때가 많은 것 같다.
이렇게 하루에 쓸 에너지를 모두 투입하고, 집에 오면, 아이들과 잠깐 그날의 근황을 이야기 한 뒤, 해외주식을 보는 생활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체력 그릇이 작아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8월 한 달은 그래서, 어떻게든 나의 체력 그릇을 키워내 정신적으로도 좀 더 압박을 '버텨낼 수 있는 멧집'을 길러보고 싶어 선택한 미션이 바로 "월 150km" 달리기 마일리지와 더불어 "31회" 달리기 실시였다.
뭐, 여름이고 하니 어차피 집에서 땀 흘리느니, 밖에서 흘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8월 1일, 드디어 처음으로 달리기를 개시하였는데, 여름날 달리기는 정말 체감상 더 나는 힘겹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인데, 습도까지 높다 보니 호흡관리 하는 것도 정말 어려워 조금만 뛰어도 심박수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그래도, 예전에 뛰던 습관이 있어 그런가 느리게라도 쭈욱 걷고 미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강도도 여전했고, 집에 와서 보는 해외주식 일봉차트도 살벌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니지, 나중 가서는 "살기 위해" 무작정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워치를 차고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일단 집 밖만 나가는 순간 5km는 달성을 할 수가 있었다.
하루는, 어느 무더운 일요일이었는데, 큰애랑 등산을 한 뒤, 힘든 몸을 이끌고 다시 뛰러 나간 적이 있다. '내 피트니스 기록에는, 달리기가 안 잡혔으니까...'라는 찝찝함이, 그 더운 여름날 등산과 달리기 두 번을 하게 만들었던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어느 날은 밤에 뛰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너무나도 더워 도저히 5km도 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땐, 과감하게 3km만 뛰고, 나머지 다른 날 좋은 날 보충하는 식으로 마일리지를 모아나갔다. 3km라도 어디냐, 일단 밖에 나가서, 20분이라도 뛴 자체가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어느덧, 광복절을 지나 8월 중순도 거의 끝나갈 무렵, 이제는 스스로가 그간 쌓인 달리기 기록이 '아까워서' 신발끈을 동여매게 되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지속한 결과, 글을 작성 중인 8월 29일, '29회 연속 달리기'와 더불어 이미 목표한 '150km 마일리지'를 달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별거 아닌데, 왜 이렇게 기쁘고, 성취감이 있는 액티비티인지 모르겠다. 사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러너들이 많다. 나는 5km도 30분 안에 잘 못 들어 올 정도로, 빨리 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 스스로 약속한 걸 해냈다는 게 나에겐 중요했다.
그래, 중요한 건 중요한 거고, 잘한 것도 잘한 건데, 뭐 살이 빠졌다거나 그런 건 없냐고? 없다. 몸무게는 그대로다. 체지방은 이제 피트니스 센터를 방문해서 재봐야 할거 같다. 사실 150km 정도를 달리면, 몸이 더 잘 빠져서 연예인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도 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만, 유산소피트니스 지표가 8월 15일 이후부터 평균이하에서 평균이상으로 올라간 것을 확인했다. 이 지표는 신체가 운동 중에 소비할 수 있는 최대 산소량이라고 하는데, 뭔가 조금 더 내가 잘 뛸 수 있게 몸이 바뀌어 가는 것은 분명 맞아 보인다.
아직 8월은 30,31일 이틀이나 남았다. 그렇지만, 스스로 잘 지키겠지. 8월의 남은 도날도 달릴 것이다. 그리고 이 기억을 잘 살려 '버텨 낼 것이다.' 업무 스트레스든 아니면 내 증권 계좌가 녹는 일봉 차트를 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