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못 올 스무 살
첫 번째 스무 살이 되기 전, 더 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나와 친구들은 '수학능력 시험'이라는 것을 치러야만 했다. 문제 하나 두 개에 따라갈 수 있는 대학교가 결정이 되곤 했는데, 필자의 경우 공부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아 사실 몇 개 더 맞아도 크게 바뀌는 부분은 없었던 거 같다. 수능을 보고, 여느 친구들처럼 남은 고등학교 학사일정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교실에서 엎드려 잠을 자곤 했었다.
어느 날,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평소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던 선생님 한분께서, 꼭 이야기해 줄 게 있다며 자고 떠들고 있던 우리에게 잠시만 집중해 달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나직하니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여러분, 수능 끝났다고, 인생이 끝난 거 같죠?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적 없이 여러분들과 하루 이틀이면 친해지는 친구들은 앞으로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공부만 잘하면 칭찬해 주던 학창 시절과 달리, 더 많은 요구사항을 받고 그것들을 해결해 가야 합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들이라면, 지금 이 귀한 시간, 친구들과 조금 더 소중한 시간을 보내거나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질 거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스무 살은, 절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영원히 젊지 않거든요. 부디, 이 귀한 시간을 꼭 여러분들을 위하여 소중히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평소 잔소리를 하시지 않던 선생님이셔서 그런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주변 친구들은 지방방송을 켜고 떠들며 킥킥대고 있었고, 나 또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흘려 들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나의 스무 살이 그렇게 빨리 떠나갈 줄 몰랐다...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갈 줄만 알았다...
첫 번째 스무 살 이후,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 프레시맨이라며 선배들로부터 밥을 얻어먹던 시기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반이 되어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군에 입대하면 시간이 안 간다고 들었고, 정말 내가 전역이라는 걸 하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어느새 나는 군복무라는 퀘스트마저 달성하며 처음으로 '소속'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를 가지 않아도 되는 기분은 처음엔 달콤하고 좋게 느껴졌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취업 준비 시간이 계속 길어지며, 나의 감정 기복을 이유로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이별을 하게 되었고, 이별의 아픔이라는 것도 경험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취업시장에서 낙방의 낙방을 거듭하다, 어느 작은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소속의 소중함'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그곳에서 맡았던 일은 행안부 공무원들의 민원 전화 게이트웨이였었다. 하루에도 200통 넘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었고, 선배들로부터도 '근성 있다'며 인정을 받아가고 있었다. 비록 퇴근해서 집에 오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고된 일이었지만, '내 자리'가 있다는 것, 그 하나로 기쁨을 안고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운이 좋게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합격하여 예전 헤어졌던 여자친구와 다시 만나 가정도 꾸리게 되었고, 일에 대한 '소중함'과 '간절함'을 갖고 업무를 하다 보니, 조직 내에서도 나를 믿어주고 일을 맡기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두 번째 스무 살"이 되었다. 지금은 이 거대한 사회라는 정글에서, 빛담이라고 불리는 나무 한그루가 묘목을 넘어 아기목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스무 살이 되기 전,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선생님께서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이야기해 주셨던 내용의 본질을 두 번째 스무 살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내가 이룩한 노력의 결과물들이며, 미래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라는 걸, 마흔이 되어가는 지금 무렵에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 번째 스무 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필자가 예순이 되면, 어떤 모습일지 나도 상상이 가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점이다. 첫 번째 스무 살 삶의 자세보다, 두 번째 스무 살 이후의 삶의 자세가 더 좋았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스무 살이 되면, 아기목에서 이제는 드디어 어른목으로서 성장하여, 다른 나무들의 그늘과 쉼터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 시절 좁은 학교교실에서 서로 힘이 되어주며 가장 힘들고 빛났던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 어디선가 다들 잘 살고 있겠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첫 번째 스무 살을 추억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우~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너의 목소리도 너의 눈동자도
애틋하던 너의 체온마저도
기억해 내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데
흩어지는 널 붙잡을 수 없어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