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나는 내 안의 무기력증이라는 거대한 군대와 싸우는 중이다.
이 녀석은, '우울'이라는 자신의 동맹군과 함께 내가 지키고 있는 성을 틈 날 때마다 공격하고 있다.
원래 이 친구들이 내 마음속 구석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건 아는데, 작년 및 올해 들어 지방 호족급으로 급성장하여 틈만 나면 도발하며 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은 나도 잘 모르겠다. 회사생활이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고 외로움이 극에 달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더 해봐야 할 부분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기력증과 우울한 감이 오는 타이밍은 앞서 이야기 한 두 부분 중 하나라도 충족되면 어김없이 아주 강하게 찾아온다는 점이다.
오늘, 월말이라 남은 잔여 업무시간을 일찍 마치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한 마음이 함께 찾아왔다. 나는 거실에 있는 1인용 소파에 걸터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낮 3시에 집에 도착해, 거의 밤이 될 때까지, 소파에서 위치를 바꿔 아이들이 자는 작은 2인용 침대 2층에 올라가, 불을 꺼놓고 옆으로 누워 몸을 꿈쩍하지 못했다. 평소, '시간이 아깝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필자인 만큼, 그 시간들이 아까워서 기운 내 일어나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많은 무기력증과 우울감이 밀려들어 나의 두 손 두 발을 모조리 포박하여 눈만 깜빡깜빡하며 시간을 하릴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
좋은 일을 생각해 보려 했다. 머릿속에서 최근 들어 좋은 일이 뭐가 있는지 꺼내보려 했는데, 아뿔싸. 생각이 나질 않았다. 반면에, 내가 이 상황에서 발버둥 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오히려 '안 좋은' 생각들이 점차 머릿속에 꽉꽉 들어 차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서글퍼졌다. 왜 이렇게 내가 숨을 쉬 고있는 것인지.
그렇게, 나는 시간이 마치 멈춘 듯 느껴졌지만, 이미 낮의 열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차가운 저녁의 공기로 바뀌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 집에서 모두 식사를 하고 온 이후, 나는 지금 내 마음을 점령한 무기력과 우울과 싸우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나 스스로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머리에 헤어밴드를 착용했다. 스마트 워치도 착용하고, 요새 자주 차가는 '복대'에 내가 평소 듣는 시사 경제 채널을 미리 플레이하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러닝화를 신고 '문 밖'으로 드디어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잠깐이나마 잃어버렸던 세상을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파트 사잇길로 나와 한강공원으로 향하는 신호등과 마주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러닝 어플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요새 매일 달리기를 한 부작용일까? 왼쪽 외측 무릎에 미세한 통증과 불편함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갈 텐데... 오늘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돌아가면 다시 마주할 수도 있는 무기력과 불안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나는 땀을 흘려 그들을 상대하고 싶었다.
처음에 발현한 왼쪽 무릎 통증 때문에, 정말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여 겨우 오늘의 달리기를 마칠 수 있었다.
오늘도, 나의 의사는 '달리기'였던 거 같다. 무기력증이 찾아올 때 진작 그냥 뛸걸... 후회가 밀려왔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찾아올 때를 필자는 종종 '피곤함'과 헷갈리곤 한다. 한데, 이 둘의 차이는 '잠'의 차이인데, 후자의 경우는 잠을 잠으로서 피로가 풀리며 해결이 되는데, 전자의 경우는 잠을 자도 해결이 안 되더라. 그래서 필자도 초기에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내 마음에서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은 처음에 피곤함을 가장하고 찾아오기에 잠을 자보려 노력하지만, 그것만으로 안 풀릴 때가 되어서야 '우울이라는 손님이 찾아왔구나'라고 알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들이 언제 올지 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물리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늘 같은 나날들이 앞으로도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