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 학교폭력에 쥐약인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초임으로 발령받은 인문계 학교에서만 5년 근무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지역 내에서 나름 명문고 대우를 받는 학교였다. 물론 시골지역이었기에 학생들의 학력이 큰 대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과거라면 학교 교정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컷 당했을 점수의 아이들도 입학할 수 있을 만큼 입학 성적 문턱이 낮아지긴 했다. 그래도 이 학교 교복을 입고 다니면 이 지역 어른들에게 '짜식, 공부 잘하나 보네'라는 이야기를 듣는 학교였다. 그만큼 이 학교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괜히 지역 사람들에게 면이 서는 그런 곳이었다. (실제로는 그냥 교육청에서 뺑뺑이의 결과로 발령받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5년이 지나 내 고향인 지방 A도시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학교를 옮길 때 내신을 쓴다. 내신에서 원하는 지역과 학교를 1 지망, 2 지망, 3 지망을 고를 수 있다. 당연히 1 지망은 내 고향인 A도시에 나름 집에서 가깝고 무난한 일반고를 적었다. (2 지망, 3 지망은 다른 지역을 적어야 해서 그냥 거리상 가까운 아무 곳이나 적었다.) 사실 A도시로 들어올 수 있다면 고등학교든 중학교든 농고든 상고든 상관없었다. 오랜 타지생활과 폐쇄적인 지역 문화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근무지를 옮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 인문계 5년 근무한 경력을 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은 있었다.
전출 학교 발표날, 내 이름 옆에 처음 들어보는 학교 이름이 있었다. '상업'이라는 단어가 있는 걸 보니 상업 고등학교인가 보다.
'뭐.. 상고도 상관없지. 생활지도 조금 빡세겠네. 그래도 방학은 온전히 방학이겠구나. 그동안 생기부 쓰고 방과후 하느라 방학이 없었잖아.'
라며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짐을 싸고 있는데 은퇴를 5년 앞둔 수석 선생님이 내가 발령 난 학교가 어딘지 물어보셨다. 아직 입에 붙지 않는 내 학교 이름을 말하니 선생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많은 말들을 삼키며 애써 말을 꺼내셨다.
"아이고.. 거기 힘들 텐데 어쩌다가.."
정말로 난감해하시는 표정에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삼키셨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나 하기에 달렸지'라는 마음으로 웃으며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 후에 전출 공문에서 내 이름을 본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료 교사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니.. 그러게 인문계 초빙 쓰라고 할 때 쓰지 왜... 점수가 낮았나..? 5년이면 낮지도 않았을 텐데..?'
나보다 더 호들갑인 친구에게 '괜찮겠지 뭐~'라고 답장을 보내면서.. 나는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정보를 모아야 해. 메신저에 발령받은 학교 이름을 친 후 근무 중인 선생님에게 쪽지를 보내보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이번에 ㅇㅇ상고로 발령받은 하옴입니다. 방학 중에 근무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아직 ㅇㅇ상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혹시 학교 분위기나 학생들의 학습 수준을 알 수 있을까요? 수업 및 생활지도를 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쪽지를 보냈는데 1초 만에 '대화' 기능으로 답장을 주셨다. 쪽지로 단발성으로 주고받기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으신 것 같았다.
'선생님, 일단 우리 학교 이 지역에서 가장 힘든 학교예요'
'아하.. 그렇군요'
'사건 사고도 많고,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요. 가장 아래 커트라인 아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기 전 마지막으로 오는 학교라고 보시면 돼요.'
'하하..'
'담임하시는 것보다 무조건 비담임이 나아요! 지금 학교에서 일과하셨던 것 같은데 무조건 일과 지원하세요. 다른 선생님들도 담임할 바에 차라리 일과하겠다고 업무 지원서 제출하신 상황이에요.' (일과는 현재 근무 학교에서 기피업무다.)
'헉.. 그 정도인가요?'
'저는 다른 학교로 떠나는 입장이라..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선생님들 애들한테 상처 정말 많이 받으세요.. 각오 단단히 하고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일과 업무는 인문계에서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만큼 기피 업무다. 꽤나 큰 업무인 만큼 비담임 포지션이다. 교직 생활의 가장 큰 보람은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오가는 정인데, 일과 업무는 선생님들의 시간표를 조정해 드리는 기계적인 일이라 보람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엑셀을 다루어야 하고 복잡한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시간표 프로그램도 새로 배워야 한다.
2년 동안 일과 업무를 맡으며 비담임으로 어느 정도 학교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생겼으니 이번에는 담임을 해보고자 각오하고 있었다. 2학기 내내 생활지도 관련 책도 읽고, 다른 선생님들의 담임 업무 노하루를 물어보고 글로 정리하며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다. 새로운 학교에서는 담임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이런 나의 야심 찬 계획은 새로운 학교를 배정받고 단 2시간 만에 빠그라졌다.
상고 교무부장님이 보내주신 '업무 분장 지원서' 1 지망 칸에 나는 당당히 적었다.
'일과'
아냐 이것만으론 뭔가 부족해.
'고교 학점제 연구학교에서 2년간 일과 업무를 맡아 근무함.'
그래 이 정도면 나에게 일과 업무를 주겠지? 일과는 내가 지금 제일 잘하는 거니까.. 하던 거 하면서 2년 동안 죽은 듯이 버티는 거야. 담임만 아니면 애들하고 크게 싸울 일도 없으니까.. 그래.. 설마 내가 정당한 생활지도를 하는데 애들이 나에게 욕을 하거나 날 때리려고 하겠어? 그리고 내가 수업만 하는데 애들이랑 싸울 일이 뭐가 있겠어?
이런 나의 바람은 새 학기 준비기간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서 받아본 업무 분장 표의 내 이름 옆의 생전 처음 맡아보는 업무명과 함께 바스스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학교폭력'
오.. 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