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하리는 많은 질문을 한다. 내일은 무슨 요일인지, 3월이 되려면 몇 밤을 더 자야 하는지, 토요일에는 뭘 할 건지, 추운데 더울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춥기도 하지만 이불을 덮기엔 답답하다는 소리다), 예수님이 좋은지 자기가 좋은지 묻는다. 그러다 신기한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용감한 별이 좋아, 따뜻한 별이 좋아?"
"음... 근데 하리야.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어디서 들은 말이야?"
"아~ 선생님이 우리 마음에 별이 있대. 용감한 별도 있고 따뜻한 별도 있대. 엄마는 무슨 별이 더 좋아?"
"우와! 좋은 말이다. 엄마는 따뜻한 별."
"왜?"
"용감한 것도 좋지만 엄마는 따뜻한 사람이 더 좋아."
"나도. 나도 엄마랑 똑같이 따뜻한 별이 좋아."
하리는 이내 잠이 들었지만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하리가 띄운 용감한 별과 따뜻한 별이 머릿속에 총총 떠다녔다. 용감함도 필요하고 따뜻함도 필요하다. 용감함도 갖고 싶고 따뜻함도 갖고 싶다. 굳이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난 따뜻함을 택한다. 용감하지만 따뜻하지 않다면 그 빛이 아플 때가 있다. 반짝이는 그 빛이 때론 아플 수도 있다. 용감하진 않더라도 따뜻함이 있다면 그 빛 속에 머무르고 싶다. 모든 걸 불사르고 해낸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어쩐지 밝은 하늘 아래 혼자 걷는 기분이다. 약하고 흔들려도 사랑이 있다면 어쩐지 깜깜한 밤하늘 아래 함께 걷는 기분이다. 그래서 난 따뜻한 별이 좋다.
지금 남편과 연애를 7년 했다. 연애하던 대학생 때 일이다. 어느 날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남편이 우리 집에 오게 됐다. 초대받아서가 아니라 술에 잔뜩 취한 아빠의 갑작스러운 부름?으로. 내가 꽁꽁 감춰왔던 나의 치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 들킨 날이었다. 오빠는 그날 알았다. 내가 왜 그동안 데이트하다가도 일찍 집에 가는지, 왜 결혼은 어려울 거라고 했는지, 빨리 천국 가고 싶단 말을 진담처럼 농담했는지...
그날 울 엄마는 오빠에게 나를 그만 만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알게 됐다. 그날 오빠는 엄마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오빠는 어느 대교에서부터 집까지 꽤 먼 거리를 눈물로 걸었다는 것을. 우리 부모님 앞에서 용감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어떤 용감한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변함없는 모습을 보였다. 내 환경이 아닌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해 줬다. 용감하게, 화려하게 나서진 않았지만 추운 겨울날 꿀물 한 병을 주머니 속에 넣고 나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 오빠는 지금 울 엄마에게 반서방이 되었고 나에게 남편이 되었다.
여전히 내 남편은 내게 용감하기보다 따뜻한 별이고 내 두 딸은 연약한 존재들이지만 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별이고, 내 곁에는 용감하기보다 따뜻한 이들이 많다. 나도 그렇게 그들 속에 따뜻한 별로 총총 떠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