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방귀를 마구마구 뀌는 편은 아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올 때가 있다. 자려고 누웠는데 "부우웅" 방귀가 나왔다. 얼른 아이들에게 "미안해. 엄마가 방귀 뀌었어." 사과를 했다.
"괜찮아 엄마. 좀 놀라긴 했지만 소화가 된 거잖아."
"소화가 된 거잖아"라니! 딸의 말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부끄러울 엄마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해준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으악", "냄새 나", "누구야!"라는 말 대신, 소화가 된 것이라고 말해주는 딸의 마음은 내게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배려였다.
우리는 내뱉고 싶은 많은 말들 중 몇 가지를 고르고 골라 하나를 선택한다. 말은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다고 해서 다 쏟아내면 안 된다. 내 입을 떠난 말을, 상대의 귀에 도착한 말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를 보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뭘 먹을지, 뭘 할지, 어디로 갈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선택은 "무슨 말을 할지"가 아닐까. 선택해서 먹은 어떤 음식은 소화가 되어 배출이 되고, 선택한 행동과 장소는 어떤 결과를 낳아 눈앞에 보인다. 그러나 선택해서 뱉은 어떤 말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말의 결과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나는 오늘 "우리 아이는 또래랑 노는 것보다 동생들이랑 노는 걸 너무 좋아해요. 군림하려고 한다니까요."라고 말하는 한 엄마를 만났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짧은 순간, "군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라는 걸 알지만 약간의 부정적인 걱정이 담긴 말 같아서 요리조리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한 단어를 선택했다.
"오. 굉장히 리더십이 있나 봐요."
"좋게 말하면 리더십이지, 독재자 스타일이에요. 호호."
말을 고르는 습관은 딸의 "엄마 방귀 배려 사건" 이후로 더 활발해지고 있는 듯하다. 부끄러움도 귀여운 실수가 될 수 있고, 단점도 새롭게 볼 수 있고, 짧아도 긴 여운을 남길 수 있고, 약한 것도 강한 것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말 한마디다. 나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가깝고 소중한 이들에게 어떤 말을 골라 전했는지, 나와 다른 낯선 이들에게는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방귀 같은 수많은 부끄러움과 연약함 앞에 "소화가 된 거잖아. 괜찮아."하고 덮어주는 말들을 내 마음에 담아두기로 한다. 들추기보다 덮고, 요란하기보다 잠잠한 말들을 내 입술에 담아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