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그 사람을 본다. 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반가움과 설렘을, 쓸쓸함과 슬픔을 느낀다. 한 사람이 걸어온 지난 시간이, 저 사람만의 이야기가 뒷모습에서 펼쳐지는 것만 같다. 앞모습에서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볼 수 있지만 어쩐지 뒷모습에서 그이의 마음이 나타나는 것 같아, 나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자꾸 뒤돌아보곤 한다.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앞모습이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뒷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웃어 보일 수도, 찡그릴 수도, 말할 수도 있다. 상대가 웃고 화내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기쁨과 슬픔이 되는 것, 소리가 되어 퍼져나가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린 축복도 고난도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살 수밖에 없는 걸까.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힘들고 아픈 것을 어쩌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때,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바뀌지 않는 상황이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할 수 없는 일들을 붙잡고 있을수록 의심과 불안이 밀려오는데, 그 순간 떠오르는 뒷모습들을 본다. 내게 뒷모습을 기꺼이 내보여줬던 이들, 함께 손잡고 걷던 뒷모습을 기억해 낸다. 그 뒷모습을 잊지 않는 것. 바라봐주는 것. 돌아봐주는 것. 그것만이 곧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곧 마음이고 위로이며 사랑이다.
유치원 버스가 눈앞에서 떠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는 부모처럼, 먼 길 가는 친구를 오래도록 배웅하는 것처럼, 집을 떠나올 때 남겨진 부모의 뒷모습을 자꾸만 돌아보듯 그렇게 우린 뒷모습을 눈에 담아야 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갈 때 때론 잘하는 일만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할 수 없는 일을 돌아보는 것. 누군가의 뒷모습을 돌아보는 것이 유일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어린이날. 푸르기만 아이들의 뒷모습 속에서 떠오르는 이들의 뒷모습을 기억하며 마주 보고 웃을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