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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Dec 17. 2023

나는 요양병원 사회복지사입니다.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15년의 간호조무사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19년 03월 오픈 병원으로 이직했다. 들어오는 기계마다 사용 매뉴얼을 만들고, 원내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후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총괄실장까지 올랐다. 그러나 연봉 협상 시 병원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월급은 계좌이체로 받을 수 있었지만 재 측정 과정에서 일부를 현금으로 따로 주겠다고 했다. 이건 정말 괜찮은 걸까. 아니면 내가 인정하지 못할 불합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순간일까. 나는 나의 성과에 대한 존중과 공정성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이런 상황은 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 같다. 그런 좋지 않은 제안에 나는 계약 기간 동안만 일을 하고 그만 두기로 결정했다.




나는 21살 1학기 여름방학, 다음 학기 졸업을 남겨놓고 조기 취업을 했다. 결혼 후에도 출산 휴가를 제외하고는 쉬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 혼자 외벌이를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남편의 지지가 있었기에를 결정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합가 생활을 하고 있었고, 고령의 시아버님은 마지막은 집에서 보내길 원하셨고, 6남매는 아버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집안에 20년 만에 새사람으로 들어간 나는 다른 가족들보다 아버님과 보낸 시간이 짧은 것이 속이상해 남편의 제안에 합가를 선택했다. 싹싹한 며느리는 아니었지만 위기 상황아 발생할 때마다 병원 경험의 기지를 발휘하여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생각보다 실업기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재가 요양을 신청하여 아버님을 돌봐드렸다. 그렇게 노년기를 미리 경험하였다.


재가 양은 하루 1시간만 인정이 되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당시 발달장애 운동센터를 운영한 남편은 '사회복지사'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하였고, 실업기간이 길어진 나도 같이 시작했다. 공부를 하는 중에 병원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지긋지긋한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2023년 08월 사회복지 현장실습까지 마치고 나니 취업에 조바심이 났다. '사회복지현장실습' 이론 강의를 들을 때 담당 교수님께서 "이력서 겨우 10번 내보고 취업 안된다고 좌절하시면 안돼요. 20대 들도 100번씩은 도전하는 우리는 그 이상 노력해야겠죠?"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워크넷에 이력서를 등록해 놓고 새로운 공고가 뜨는 대로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주간보호센터, 재가센터, 아동보호센터 등등 많은 곳에 지원하였지만 면접을 보자고 연락온 곳은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워크넷에 등록해 놓은 이력서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설마 당신 혼자 면접 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면접을 보는 건 아니야. "




다음날 요양병원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온통 굳게 닫힌 문에 "벨을 누르세요"라고 붙어져 있었다. 병원 로비에 들어섰을 때 원무과 앞에 앉아 있는 두 직원을 보자마자 '병원이구나'느꼈다. 합격의 의지가 없어서일까. 면접 볼 때 부담스럽지 않았다. 면접관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병원치고 근무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주 5일 근무에 토요일은 당직으로 돌아갔다. 퇴근시간은 5시 30분이고, 점심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그리고 복지지사는 1명이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살이 참 따뜻했다. 집에 도착 후 아이들 하원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마흔, 인생이 전환점. 두 번째 직업을 갖게 되었다. 병원로비에서 보았던 원무과 직원 2명. 그중 한 명이 나의 전임자일줄은 모른 채로 말이다.


지난 여름, 나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했다. 지역 아동들에게 멘토링을 제공하고, 기업제안서와 프로포절 등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오피스룩을 입고 출퇴근하는 전문 회사원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비록 4주라는 은 시간이었지만 10명의 동기들과 함께 사회복지사의 삶을 꿈꿔보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종합사회복지관''사회복지공무원'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각자가 가진 정보를 공유했다. 나는 사회복지행정가의 꿈꾸었다. 요양병원 사회복지사 역할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세의 나이, 초보 사회복지사, 그리고 경력단절녀라는 나의 현실은 요양병원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급히 먹는 밥은 체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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