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알아가다 보면 영화라는 매체와 점점 가까워지는 듯하면서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의문들이 잇따라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영화란 무엇인가?’와 ‘영화의 연출은 무엇인가?’였다. 전자의 경우에는 영화를 삶에 체화시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만한 질문이기도 하거니와 평생 안고 가야 할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논하는 것도 어렵고 특히나 어떤 답이든 내놓으려 하면 곧장 그것을 반박하는 영화의 또 다른 특성이 불쑥 튀어나와서 다시금 영화와 사이가 멀어지도록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섣불리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두려운 행위이기도 하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첫 번째 질문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본질적이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조금 더 개별 작품과 그 작품의 내재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하나의 감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영화를 보는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이미지들의 향연 속에서 어떤 실체를 잡아보려 한다는 것이 멀게만 느껴졌기에 여전히 막연한 감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멀어질 수만은 없는 법. 조금이나마 더 실체적인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좀 더 붙잡고 파헤쳐 보고 싶었다. 그렇게 영화의 연출은 무엇인가에 대해 그 실체를 조금이나마 포착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것을 파헤치는 과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영화의 연출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각본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 미장센을 아름답게 구성하는 것? 인물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내는 것? 아니면 영화 그 자체? 사실 어떤 대답을 내놓든 간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어느 정도 영화의 연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대답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의문은, 각본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결국 영화의 본질은 각본에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장센이라 하면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편집 등이 조금 더 부각되는 것 같기도 하고, 감정이라고 한다면 연기나 촬영, 편집 등이 조금 더 주목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연출이라는 작업이 이러한 모든 세부영역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구심점, 즉 영화의 뇌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모든 대답들이 전부 올바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여전히 찜찜한 것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연출가에게 가장 많은 크레딧을 부여하는가?라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경우에 영화는 연출가의 이름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여러 가지 기술적 측면들을 엮어 내는 그 생각 혹은 관념적인 것에 많은 공을 돌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계속 영화를 보다 보니 느껴지는 것은 연출가에게 많은 공을 돌리기엔 연출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화의 핵심적인 관념 자체를 품고 있는 이 연출이라는 개념은 그 관념적 성격 때문에 스스로를 베일에 감춰진 존재로 만들며 결국 이것이 영화 '연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찜찜하게 만든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연출에 대해 논하고 어떤 연출가를 좋아하고 그들에게 많은 공을 부여하는 현상은 분명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 관념적인 연출이라는 개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를 보는 가장 직관적인 시선은 대표적으로 '영화의 메시지가 좋다.', '이야기가 재밌다.', '이야기가 아름답다.'로 표현되는 내러티브 중심의 시선과 '영상미가 좋다.', '화면이 아름답다.'로 표현되는 미장센 중심의 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내러티브 중심의 시각이라면 연출보다는 각본에 더 많은 크레딧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각본을 가지고 다른 연출가가 각각 두 개의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분명 전혀 다른 영화가 나올 것은 분명하지만 그 중심이 되는 이야기 골자는 같고 결국 '영화의 메시지가 좋다.', '이야기가 재밌다.' 등의 감상은 공통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조금 더 연출과 맞닿아 있는 것 같긴 하다. 기본적으로 영화가 시청각 예술이라는 점에서 감독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넓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영화의 연출이다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아무리 영화가 시청각 예술이라도 영화의 역사에서 내러티브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소리를 중심으로 본다든가 연기를 중심으로 본다든가 영화의 연출을 논하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이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연출의 핵심적인 맥을 짚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결국 연출이라는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의 집합과 총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이야기지만 영화의 연출의 총체를 포착하기 어렵고 그것이 관념적이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로도 그것이 모든 실제적인 것이 모여서 만든 관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 총체는 스크린 위에서 아주 짧은 시간 지속되다 사라지고 기억의 한켠에 자리잡기 때문에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봐도 관념을 넘어선 실제적 이미지가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 장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총체가 어떤 관념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느낀 관념과 그 관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해체해서 하나씩 바라본다면 분명 그 관념적인 연출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한 방식으로 영화를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연출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이 유령과 같은 영화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구체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무리 내가 연출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연출에 대한 철저히 주관적인 개념일 것이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장면을 분석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하게 될 이 기록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 될 것이고 어쩌면 효용성이 전혀 없는 기록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