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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주 Jan 21. 2022

<파워 오브 도그>

[영화의 연출은 어디서 발견되는가 #1]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니 보신 분들이 읽으시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영화의 연출을 발견하고자 하는 기록의 시작으로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선택한 것은 당연하게도 나에게는 이 영화가 지난해 최고의 작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에 애정을 갖고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헤쳐 보고자 했다.

    영화 전체를 뜯어보는 것은 지나치게 방대한 과정이라 우선 20분가량의 1장을 중심으로 이 영화가 가진 주목할만한 연출적 포인트들을 짚어보도록 할 것이다. 먼저 짧게 요약해보자면 이 영화의 초반부를 감싸고 있는 테마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동적인 이미지와 정적인 이미지의 대비, 수평적 이미지와 수직적 이미지의 대비와 이러한 대비들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에너지였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관계과 그에 따른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인물을 소개하는 방식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영화의 초반부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1. 동적인 이미지와 정적인 이미지의 대립

    영화의 첫 장면은 흙먼지를 통해 보이는 혼란스러운 소의 배열과 그런 소를 잡는 카우보이들의 모습으로 영화의 배경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필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다. 이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움직이는 소, 움직이는 카우보이. 그리고 그중에서 중심이 되는 움직이는 필. 그리고 걸어오는 필에게 부여되어 있는 메인 음악 테마의 밴조 리듬은 그의 발걸음 속도와 딱 들어맞으면서 장면의 에너지와 리듬을 필과 음악이 장악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밴조 연주를 하는 필. 그즈음 조지가 소개되는데 조지는 필과 달리 욕조에 몸을 담가 가만히 앉아있다. 여기에 목장을 물려받은 햇수를 물어보는 필과 목욕 여부를 물어보는 조지의 대화가 더해져 첫 시퀀스부터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통한 이중적인 대비를 이뤄낸다. 이어지는 시퀀스에서도 역시 필과 조지의 대비가 핵심적인 모티브로 작용하는데 계속해서 앞으로 이동하는 소의 무리와 카우보이를 통제하는 것은 필이고 조지는 그 행렬에서 살짝 벗어나 그들 중에서 가장 정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전형적인 카우보이 복장을 한 필에 반대되는 양복차림의 조지는 이러한 대비를 훨씬 더 직관적으로 만들어준다. 그러한 조지에게 필이 다가와 대화를 시작하는데 대화 도중에도 필은 조지를 중심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그 동적인 에너지를 계속해서 발산한다. 역시나 필의 말을 거의 무시하다시피 한 조지의 태도에 빈정상한 필은 조지를 앞질러 나가게 된다. 이때 카메라는 필을 약간 앙각으로 잡아서 그를 우러러보게 되는 듯한 기이한 권위를 필에게 부여한다. 또한 그렇게 하면서 거의 역광에 가까운 측면광을 필이 받도록 만들어 그러한 극적인 이미지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메라가 필의 말이 움직이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게 필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처음엔 필이 화면 약간 왼쪽에서 이동하다가 잠시 후 중앙에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필이 화면 왼쪽에서 중앙으로 이동할 때를 제외하면 카메라는 말과 같은 속도로 필을 따라가게 되는데 이로 하여금 그 순간에는 필이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준다. 다시 정리해보면, 그 짧은 장면 속에서 필은 '제자리걸음-전진-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이 인상 깊은 것은 비단 극적인 이미지나 기묘한 느낌 때문만은 아니고 앞에서 보았던 동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필과 그와는 반대되어 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던 조지와의 어긋남이 필에게 가져다준 혼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있고 그것을 앙각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필은 분명 위아래로 요동치고 있는데 앞으로는 나아갈 듯 나아가지 않는 동과 부동의 기묘한 어긋남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장면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장면이라고 말하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제 피터가 등장한다. 종이를 자르는 모습의 클로즈업과 완성된 꽃술을 바라보는 피터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이는 첫 장면에서 보았던 필의 등장과 직접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멀리서 걸어오는 익스트림 롱 숏의 동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필과 바로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클로즈업의 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피터의 대비인 것이다. 또한 서늘한 음악 테마 또한 필의 음악 테마와 완전히 상반된 음악을 사용하여 서늘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이전과의 극적인 대비를 이루게 된다. 필의 테마가 그의 걸음걸이와 같은 동적인 리듬을 가진 테마였다면 피터의 테마는 초고음의 건반으로 어딘가 서툰듯한 리듬을 만들면서 약간은 경직되고 직선적이고 각진 리듬을 가진 테마로 표현된 것이다. 곧이어 이러한 암시적인 대비가 직접적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 등장한다. 피터가 아버지의 묘지에 꽃을 꽂고 일어나 머리를 빗으면 그 뒤로 소 떼의 행렬이 화면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것이다. 이 장면은 꽂힌 꽃을 보여주는 숏과 소 떼가 이동하는 모습을 바로 이어 붙여서 그 정적인 에너지와 동적인 에너지를 교차시키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머리 빗는 피터의 모습과 그 뒤를 가로지르는 소 떼의 행렬 또한 이러한 대비의 연속처럼 보인다. 이어서 필은 또다시 자신의 음악 테마와 함께 말을 타고 등장하는데 처음에 걸어오는 필의 걸음처럼 말을 타고 있는 필의 움직임과 음악 테마는 놀랍도록 조화롭다.(다시 한번 느껴보시기를 추천한다.) 영화는 다시 조지와 필의 관계로 눈을 돌리는데, 필과 카우보이들이 술집에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 정 중앙으로 조지가 들어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지를 가운데 두고 필을 비롯한 카우보이들이 조지를 둘러싸는 구도가 형성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조지를 필이 몰아붙이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도 역시나 먼저 움직여 조지를 궁지로 몰게 만드는 장본인은 필이고 조지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운동성의 차이를 다시 느끼게 된다. 또한 건배사가 끝나고 조지만 남은 채 다른 카우보이들이 먼저 식당으로 가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겠다. 조지만 남아서 술집 주인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값을 지불하는데 이는 소동 끝에 안정된 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면서 한 장면에서의 대비를 완성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이 나타난다. 분명 움직이는 인물도 필이고 모든 장면을 장악하며 주도한 인물 또한 필인데 정작 우리가 보기에 더욱 마음이 가는 인물은 조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부 개척 시대의 끝자락인 당시 시대적 배경과 조지의 복장으로 미루어보아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마저도 든다. 결국 계속 앞으로 나가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건 필이지만 그것은 발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전진성과 움직임이라는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발전이라는 개념을 이미지의 아이러니를 통해 전복시키면서 우리에게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그대로 투영시킨 것은 이 영화가 탁월하게 성취한 지점일 것이다.



2. 수직적 이미지와 수평적 이미지의 대립과 총체적 에너지


    바로 위의 장면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위의 스틸컷에서 볼 수 있듯이 프레임은 정확히 피터와 소 떼로 인해 십자가처럼 나뉘게 된다. 이는 결국 정적인 피터의 삶에 동적인 필이 침입하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고 동시에 수평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필과 수직적으로 서 있는 피터의 대립이 불가피함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거기다 멀대 같이 키가 크고 자칫 잘못하면 부러질 것 같이 얇은 피터의 형상 자체도 그러한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하나의 미장센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잠시 앞으로 돌아가 보자. 필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필은 멀리서 걸어오고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을 가로지르는 수평적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다가오는 것이다. 다음날 필이 이끄는 소 떼는 익스트림 롱 숏으로 나타날 때 화면 전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질러 가고 있다. 그리고 정착을 하러 들어오는 장면에서도 여전히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며 들어온다. 결국 계속해서 앞으로 이동하는 동적인 이미지이자 앞으로 이동하는 것은 지평선을 따라 이동하는 수평적 이미지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위의 장면이 필의 세력이 피터를 침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전경에는 피터가 위치한다는 점에서 필의 행렬이 피터에 의해서 양분되고 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이런 이미지와 에너지의 대립과 역전을 통해 계속해서 흥미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는 필을 중심에 둔 지극히 수평적인 카우보이들의 학익진 대형이 등장하며 그들은 술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술집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식당 장면은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는 장면이자 1장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카우보이들이 술집에 들어와 자리를 잡을 때 다른 카우보이들은 자리에 앉는 반면 필 혼자 우두커니 서서 로즈에게 피아노를 쳐 달라고 떼쓰는 옆 테이블을 경멸하듯 바라본다. 모두가 자리에 앉으면 필 혼자 우뚝 서 있게 되는데 이때 부각되는 수직적 이미지는 분명 필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이 종이꽃을 집어 들고 화면이 롱 숏으로 바뀌면 화면 왼편에서 피터가 걸어오고 있다. 그러면서 피터 또한 우뚝 선 수직적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필의 권위를 침해하고 양분하게 된다. 필이 앉게 되면 우뚝 선 사람은 피터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영화의 쇼트는 그것을 필과 피터를 한 프레임에 위치시키지 않고 각각의 프레임으로 나눠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종이꽃을 바라보는 필의 시점 샷을 배치하면서 피터와 필을 완전히 분리시킴과 동시에 필이 종이꽃을 만든 사람이 피터임을 짐작했다는 것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떤 꼬마 아가씨가 이걸 만들었을까?'라는 대사의 반응으로 피터가 필 앞에 다가오면서 양분된 프레임이 다시 합쳐지게 되는데 이 상황 속에서는 필과 피터만의 대립이 아니라 피터와 앉아있는 카우보이들 전체의 대립이 형성되면서 피터 혼자 서 있는 수직적 이미지가 더욱 부각된다. 그런 피터를 필이 무자비하게 조롱하면서 필은 자신의 권위를 침해했던 수직적 에너지를 피터 혼자 발산하게 만들어 그것을 그야말로 '별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필이 스스로 '별종'으로 만들어 버린 그 수직적 에너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필 스스로가 피터와 공유하고 있던 에너지였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전체 맥락을 고려했을 때 스스로가 별종임을 숨기고 자신의 거울 형상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필의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상처받은 피터는 주방으로 돌아가고 영화의 에너지는 잠시 안정되어 카메라는 옛날이야기를 하는 필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어떠한 이미지의 부각이나 에너지의 동요 없이 안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안정된 롱 테이크 숏을 분절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음식을 들고 들어오는 피터다. 그런데 이때 필은 다른 카우보이들과 함께 프레임에 위치하는 반면 피터는 단독샷을 받게 되면서 이전의 '별종' 이미지를 다시 한번 부각한다. 이때 화룡점정으로 필은 피터의 꽃에 불을 붙여 담뱃불로 사용하게 되는데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불붙은 꽃을 화병에 거꾸로 꽂아버리면서 피터의 수직적 이미지를 하강의 수직적 이미지로써 완전히 무너뜨린다. 더욱이 그 행동에 수반되는 대사가 '날아올랐어'라는 점은 탁월한 배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피터를 완전히 몰아내면 필은 단독 클로즈업 숏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때 필 앞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마치 무너진 수직적 에너지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이어 필이 조지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조지가 천진하고 능청스럽게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필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권위와 에너지를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그 분노는 자동 피아노를 작동시킨 옆 테이블 손님에게 번지는데 이때 필은 고함을 치며 벌떡 일어난다. 결국 자기가 그토록 조롱하고 무너뜨린 수직적인 별종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둔 격이다.


3. 다시 등장하는 동적인 이미지와 정적인 이미지


    분노한 피터는 주방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그리곤 가만히 서서 울먹이며 빗을 긁는 소리를 내다가 밖으로 나가 훌라후프를 돌린다.  어떠한 동적인 에너지도 발산하지 않았던 피터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동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장면을 카메라는 야속하게도 익스트림 롱 숏으로 잡아, 한 없이 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정적인 이미지는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조지와 이어지는데, 이 때도 역시 다른 카우보이들이 나가는 가운데 조지는 가만히 앉아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필 또한 조지를 설득하기 위해 남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까지 필이 조지에게 계속 물어보고 말을 걸고 했던 것과 연결되어 결국 필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정적인 이미지로 대표되는 것들에서 조지를 끌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조지는 계속 남아있고 울고 있는 로즈와의 특권적 투 숏을 부여받게 되면서 필과 대척점에 서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흥미로운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이 그토록 혐오하는 조지와 피터의 모습은 자신이 애써 숨기려고 했던 자신의 거울 형상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이미 필이 그동안 형성해 온 자신만의 세계를 흔들기에 충분했는데 바로 이어지는 시퀀스에서 다른 카우보이들과 여자들은 발을 구르고 춤을 추고 있는데 필은 가만히 서서 노래만 부르며 정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술집을 나와 여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텅 빈 여관에서 필은 조지를 애타게 찾게 되고 조지를 찾지 못하자 침대에 마치 아이처럼 웅크려 잠들었다가 조지가 오고 나서야 비로소 편히 잠에 들 수 있게 된다. 결국 필은 자신이 숨기려는 것을 애써 혐오하고 외면하고 있지만 그 불완전한 본성은 숨길 수 없는 것이고 필은 그 앞에서 한 없이 약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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