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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주 Nov 04. 2021

영화 <그린 나이트>가 시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하여

영화 <그린 나이트>에 대한 콜라주적 단상

*2021년 8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그린 나이트>는 이제 막 개봉한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 <유전>에 대해 쓴 단상처럼 영화를 조목조목 뜯어볼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인상들과 디테일들을 토대로 영화를 조금 더 실증적 차원으로 끌어올려보고자 했다.



먼저 영화가 타이틀을 제시하는 방식에 대해서 말하자면 'Sir Gwain and...'이 순간적으로 아주 다양한 서체로 책 표지처럼 지나가고 마지막에 결정된 서체로 잠시 뒤 'The Green Knight'가 등장하며 타이틀이 완성된다.

이러한 표현방식이 그 자체의 독특함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더왕 이야기의 특성상 한 가지 버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무수히 많은 버전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타이틀 제시 방식이 이 영화 또한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의 무수히 많은 버전 중 오직 하나의 버전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조금 바뀌었던 순간이 숲에서 묶인 가웨인의 180도 패닝 쇼트인데, 패닝 이후에 해골이 돼서 죽은 가웨인과 같은 자세의 남자가 있다는 것이 결국 그 죽은 이와 가웨인에 대한 동일시일 텐데, 이것이 시간에 대한 은유로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또 다른 가웨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보았던 다른 서체의 책 표지에 등장하는 가웨인인 것이다.

또한 위니프레드가 했던 말 중에 이미 전에 왔다 갔던 또 다른 기사가 있었다는 말과 더해 정말 당신이 아니었냐? 라며 되묻는다는 것이 앞의 것과 연결돼서 결국 이 여정길을 떠나는 것이 우리가 보는 데브 파텔의 가웨인뿐이 아닌 수많은 가웨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우리가 보고 있는 가웨인 이후에 또 다른 가웨인이 여정길을 떠나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이 모두 시공간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특이한 건데, 묶여 있는 가웨인의 180도 패닝 쇼트는 사실 엄밀히 말하면 180도 회전했을 때의 풍경이 가웨인의 시점 샷이 되어야 하는 건데 우리에게 보이는 죽은 기사의 모습과 그 주변 풍경은 가웨인의 시점 샷이라고 보기엔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또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한 바퀴 도는 동안 하룻밤이 지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러한 공간적 불연속성, 시간적으로도 패닝 한 바퀴에 하룻밤이 지나는데 그 하룻밤 동안 삶과 죽음, 다시 죽음에서 삶까지 아주 광활한 시간성을 가지면서 취하는 시간적인 연속성의 해체까지 가져가면서 한 바퀴 돌아왔을 때 우리가 본 가웨인에 대해서도 이 가웨인이 이제는 더 이상 그저 리얼리티의 재현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가치적인 존재로 환원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위니프레드의 집 같은 경우도 처음엔 침대에 위니프레드의 몸이 존재하지 않고, 유령으로 나온 위니프레드의 목도 달려있는데, 연못에서 해골을 구해서 나온 뒤에는 침대 위에 위니프레드의 몸이 있고 도끼도 있다.

마법과 유령이라는 초자연적인 것들을 근거로 공간적인 연속성을 해체하고 있고 이 모든 게 잠을 잔 이후에 벌어진다는 점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적인 불연속성까지 가져갔다고 보인다.

결국 이런 장치들을 통해서 영화가 계속 시공간을 해체하고 영화가 단지 리얼리티의 재현이 아닌 모호한, 실존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 극치가 종반부 도망친 가웨인의 몽타주 시퀀스인데, 가웨인이 도망치고 왕이 되고 목이 잘리기까지는 시간, 공간적 연속성을 챙기고 있는 반면, 도망친 가웨인이 죽자 그것이 곧바로 해체되어 다시 제단에 있는 가웨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이게 환상인지, 마법인지, 플래시백인지 영화는 어떠한 단서도 주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또 다른 가웨인’ 이야기를 적용시키면 도망친 가웨인은 도망친 가웨인대로 존재한 것이고 이 마지막 장면에 존재하는 가웨인은 또 다른 가웨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전히 시공간의 모호함을 극한으로 치닫게 하는 시퀀스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결국 해골이 된 가웨인, 위니프레드를 겁탈하려 한 가웨인, 도망친 가웨인 등등 이 여정길에서 가웨인이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한 암시는 가웨인의 여정이 특정한 결말에 도달하게 되기까지 그 여정길에서의 어떠한 선택, 우연, 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그러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고 이것은 비단 가웨인의 여정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인생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실존적인 담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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