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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vy May 05. 2022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여덟 번째 독서노트,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개구쟁이 소년 허클베리 핀(이하, 헉)과 흑인 노예 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정 중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헉은 주정뱅이에 망나니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서, 짐은 새로운 주인에게 팔려가는 것이 싫어서 각각 마을에서 도망치는 도중에 서로 마주치게 된다. 헉과 짐은 흑인 노예가 해방된 자유주(州)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 때로는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며 힘들게 자유주 근처까지 다다랐지만 성공의 목전에서 짐이 백인들에게 사로잡히면서 그들의 꿈이 좌절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헉은 자신을 능가하는 개구쟁이 톰 소여(이하, 톰)의 도움으로 짐이 감금되어 있는 펠프스 씨의 집에서 짐을 탈출시키고 셋은 다시 마을에서 도망친다. 이번에는 성공하는가 싶더니 톰이 뒤따라오는 마을 사람에게 총상을 입어 결국 짐은 다시 사로잡히게 된다. 헉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시점에 톰은 짐이 이미 자유의 몸이란 사실을 펠프스 부인에게 털어놓는다. 짐의 주인인 왓츤 부인이 죽기 전, 짐을 다른 곳에 팔려던 행동을 후회하고 그를 완전히 놓아주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짐 구출 작전은 헉에게는 짐의 생사가 걸린 문제였지만, 톰에게는 일찌감치 해방된 짐과의 놀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후, 자유인 짐은 훌륭한 죄수 역을 해준 대가로 톰으로부터 40달러라는, 당시 기준으로 큰돈을 받는 행복한 결말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헉의 엉뚱한 고민


    내가 한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참한 마음이었지요. 난 암만 좋은 일을 하려고 별러도 나에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일을 하는 걸 배우지 못한 인간한테는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중략) 가만있자 내가 옳은 일을 해서 짐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하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기분이 좋지 못했을 거야 — 아마 지금과 마찬가지 기분이었을 거야. (중략) 나는 여기서 그만 딱 막히고 말았지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마크 트웨인,「허클베리 핀의 모험」, 김욱동 역, 민음사, 2006, pg.221-222
    나는 기도를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과거의 내가 아니라 좀더 훌륭한 아이가 될 수 있을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꿇었지요. 하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에게 감추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중략) 그것은 내 마음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속과 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포기하는 척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가장 큰 죄에 매달려 있는 거지요. 입으로는 옳은 일, 깨끗한 일을 하겠다고, 그 검둥이 주인에게 검둥이가 있는 곳을 편지로 알려주겠다고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겁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pg.449-450
    짐에게 나쁜 감정을 품었던 때는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그 반대의 장면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짐이 자기 몫의 당직을 한 다음, 내가 그대로 잠을 잘 수 있도록 나를 깨우지 않고 내 몫까지 당직을 해준 짐의 모습이며, 안갯속에서 내가 돌아왔을 때에도, 그 숙원 싸움이 있던 늪지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또 그 밖에도 그토록 기뻐하던 짐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지요.
「허클베리 핀의 모험」, pg.451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19세기 미국인들의 생활상과 생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당시 미국에서 흑인 노예는 하나의 물건이었다. 따라서 도망친 흑인 노예는 붙잡아서 원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헉은 짐을 원주인에게 넘기기는커녕 그의 탈출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내적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난 원래부터 이런 아이였으니까.' 하면서 자책하는 헉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노예 제도를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헉의 엉뚱한 고뇌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의 여러 가지 사회상 중에서 100년 후, 200년 후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여겨질만한 것들은 어떤 것일까? 마스크 착용에 지나치게 적응해버린 나머지 이제는 실외에서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민망해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미래인들은 재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낭만에 미친 소년


    이 집 사람들은 자물쇠를 채우는 법이 없기 때문에 사슴 가죽끈을 약간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었지요 — 그러나 톰 소여에게 이것은 너무 싱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짜고짜로 피뢰침 장대를 타고 기어올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pg.489
    "저기 있는 저 못 쓰게 된 헌 곡괭이로도 검둥이 하나쯤은 능히 파낼 수 있지 않을까?"
    톰은 이쪽이 울고 싶을 만큼 동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헉 핀, 넌 죄수가 땅을 파서 탈옥하는 데 곡괭이니 삽이니 그 밖의 여러 현대적인 편리한 장비를 옷장 속에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니? (후략)"
「허클베리 핀의 모험」, pg.503

    한시라도 빨리 짐을 구출해야 하는 헉은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톰은 그러한 헉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허튼 소리만 늘어 놓는다. 쉬운 길을 굳이 이상한 방법론을 들먹이면서 돌아 돌아서 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톰은 처음부터 짐 구출 작전을 자신의 모험심을 채워 줄 놀이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고집을 부릴 수 있었다. 즉, 짐이 자유의 몸이라는 사실을 톰이 몰랐다면 톰도 헉의 계획을 막거나 짐을 빠르게 구출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짐을 구출해서 도망치다가 총을 맞았는데 오히려 영웅담을 늘어놓을 생각으로 기뻐하는 톰의 모습을 보면 기본적으로 톰은 현실파보다는 낭만파로 보인다. 혹은 실제로 미쳐버린 소년이거나.

    톰을 보면 부산에 사는 필자의 친구 하나가 떠오른다. 보통 사람들이 기행이라고 여기는 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즐기는 그 친구는 얼마 전 시내버스만을 이용하여 서울까지 올라왔다. 비행기로 1시간, KTX로 3시간이면 닿는 서울을 22가지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20시간 만에 도착했다. 처음에 필자는 헉처럼 그의 도전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그의 모험담을 듣고 나서는 이내 참 재미있고 멋진 도전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이처럼 헉은 왜 톰의 계획을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결국 톰의 의견을 따라가고, 필자는 왜 이 친구의 기행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가? 바로 톰과 필자의 친구는 낭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마무리


    이 책은 짤막한 경고문으로 시작한다. 경고문에 의하면,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동기나 교훈,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각각 기소, 추방 또는 총살될 수 있다. 왜 시작부터 이런 섬뜩한 경고문을 실어 놓은 것일까? 아마도 이 책에서 어떤 교훈을 찾거나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는 순간 모험이 선사하는 낭만과 재미를 전부 잃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허튼짓 하지 말고 순수 재미만을 좇아라.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경고문은 작품의 재미를 보장하는 마크 트웨인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 후 가끔 의자와 이불 따위로 비밀 기지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던 유년기를 추억해 본 경험이 있다면, 분명히 이 책의 매력에 듬뿍 빠질 것이다.



인용 출처 - 마크 트웨인,「허클베리 핀의 모험」, 김욱동 역, 민음사, 2006

이미지 출처 - www.freepik.com, 유료 라이선스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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