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독서노트, 마크 트웨인
내가 한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참한 마음이었지요. 난 암만 좋은 일을 하려고 별러도 나에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일을 하는 걸 배우지 못한 인간한테는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중략) 가만있자 내가 옳은 일을 해서 짐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하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기분이 좋지 못했을 거야 — 아마 지금과 마찬가지 기분이었을 거야. (중략) 나는 여기서 그만 딱 막히고 말았지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마크 트웨인,「허클베리 핀의 모험」, 김욱동 역, 민음사, 2006, pg.221-222
나는 기도를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과거의 내가 아니라 좀더 훌륭한 아이가 될 수 있을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꿇었지요. 하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에게 감추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중략) 그것은 내 마음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속과 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포기하는 척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가장 큰 죄에 매달려 있는 거지요. 입으로는 옳은 일, 깨끗한 일을 하겠다고, 그 검둥이 주인에게 검둥이가 있는 곳을 편지로 알려주겠다고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겁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pg.449-450
짐에게 나쁜 감정을 품었던 때는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그 반대의 장면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짐이 자기 몫의 당직을 한 다음, 내가 그대로 잠을 잘 수 있도록 나를 깨우지 않고 내 몫까지 당직을 해준 짐의 모습이며, 안갯속에서 내가 돌아왔을 때에도, 그 숙원 싸움이 있던 늪지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또 그 밖에도 그토록 기뻐하던 짐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지요.
「허클베리 핀의 모험」, pg.451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19세기 미국인들의 생활상과 생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당시 미국에서 흑인 노예는 하나의 물건이었다. 따라서 도망친 흑인 노예는 붙잡아서 원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헉은 짐을 원주인에게 넘기기는커녕 그의 탈출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내적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난 원래부터 이런 아이였으니까.' 하면서 자책하는 헉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노예 제도를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헉의 엉뚱한 고뇌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의 여러 가지 사회상 중에서 100년 후, 200년 후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여겨질만한 것들은 어떤 것일까? 마스크 착용에 지나치게 적응해버린 나머지 이제는 실외에서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민망해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미래인들은 재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집 사람들은 자물쇠를 채우는 법이 없기 때문에 사슴 가죽끈을 약간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었지요 — 그러나 톰 소여에게 이것은 너무 싱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짜고짜로 피뢰침 장대를 타고 기어올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pg.489
"저기 있는 저 못 쓰게 된 헌 곡괭이로도 검둥이 하나쯤은 능히 파낼 수 있지 않을까?"
톰은 이쪽이 울고 싶을 만큼 동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헉 핀, 넌 죄수가 땅을 파서 탈옥하는 데 곡괭이니 삽이니 그 밖의 여러 현대적인 편리한 장비를 옷장 속에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니? (후략)"
「허클베리 핀의 모험」, pg.503
한시라도 빨리 짐을 구출해야 하는 헉은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톰은 그러한 헉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허튼 소리만 늘어 놓는다. 쉬운 길을 굳이 이상한 방법론을 들먹이면서 돌아 돌아서 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톰은 처음부터 짐 구출 작전을 자신의 모험심을 채워 줄 놀이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고집을 부릴 수 있었다. 즉, 짐이 자유의 몸이라는 사실을 톰이 몰랐다면 톰도 헉의 계획을 막거나 짐을 빠르게 구출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짐을 구출해서 도망치다가 총을 맞았는데 오히려 영웅담을 늘어놓을 생각으로 기뻐하는 톰의 모습을 보면 기본적으로 톰은 현실파보다는 낭만파로 보인다. 혹은 실제로 미쳐버린 소년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