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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vy Jun 08. 2022

가짜 논리

아홉 번째 독서 노트, 줄리언 바지니


    가끔 TV에서 토론회를 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근거와 주장을 내세우는 토론자가 있는가 하면, 상대의 주장을 조목조목 똑 부러지게 반박하면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토론자도 등장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토론의 승자로 인정하고 때로는 더 나아가 '사이다'라고 명명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토론에서 사이다라 불린 사람들의 주장은 반드시 논리적으로 타당할까? 줄리언 바지니(이하, 바지니)가짜 논리 - 세상의 헛소리를 간파하는 77가지 방법을 읽은 다음이라면 이른바 토론회 승자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77가지나 되는 논리적 오류를 소개하고 있으나 본 독서노트에서는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이는 논리의 오류 몇 가지만을 정리하였다.



우유는 송아지가 먹어야지


우유는 송아지를 위한 것이다. 우유가 코막힘과 부비동, 습진과 천식 같은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 음식 부작용의 주요 원인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존 브리파, 의사, 월간《옵서버 푸드》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보통 사람도 아닌 의사가 꺼낸 말이다. 설령 어딘가 논리가 이상하다고 느끼더라도 어떻게 반박할지 쉽사리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반박해 보면 어떨까?

    브리파의 논리에 따르면 닭 다리는 닭이 서고 걷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의 용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걸 먹지 말아야 할까? 건강에 좋다는 꿀은 어떤가? 그것도 사람이 아니라 벌들을 위한 것이다. (중략) 요점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뭔가가 애초에 인간의 먹을거리로 생겨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걸 먹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로지 원래부터 인간의 먹을거리였던 것만 먹는다면, 엄마 젖을 떼는 순간 우리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줄리언 바지니,「가짜 논리」, 강수정 역, 한겨레출판, 2011, pg.28-29 
    일반적으로 사물의 현재 성격이 반드시 그것의 기원을 답습하지는 않는다.
「가짜 논리」, pg.29 

    이제 다시 의사의 발언을 곱씹어 보면 처음만큼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체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때문에 우유 섭취를 권장하지 않는 의사는 우유의 기원이 송아지의 먹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부작용을 발생시키는 우유의 특정 성분을 제시해야만 했다. 바지니의 반박처럼 많은 사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고유의 성질이 변하기 때문에 어떤 사물의 현재를 평가할 수단으로 그것의 기원을 이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바지니는 기원을 맹목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도 잘못된 논리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기원과 관련된 문제는 실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양념치킨은 한식인가?' 역시 그러한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각의 문제마다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피라미드가 고대 이집트 왕들의 무덤이라고 해서 현대에 이집트 여행을 가서 피라미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행위를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피라미드론'을 근거로 대한민국 해방 이후 정부 청사로 사용되었던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까?



잘못된 이분법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와 함께할지, 테러리스트의 편에 설지를.
- 조지 W. 부시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부시는 어째서 굳이 저런 표현을 쓰고 같은 공식을 반복했을까? 사실을 전달하기에는 잘못된 방법이지만, 미국의 입장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시는 동의를 구한 게 아니라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가짜 논리」, pg.103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을 것인가? 찍어 먹을 것인가?'처럼 가벼운 문제부터 '급한 일과 중요한 일 중에서 어떤 일을 먼저 처리할 것인가?'처럼 무거운 문제까지 세상에는 많은 이지선다 문제가 존재하고 때때로 우리는 그중 하나만을 선택하기를 종용 받는다. 뭐든 상관없거나 둘 다 싫거나 아니면 두 선택지의 중간쯤 어딘가를 찍어 답변하면 회색분자가 되어 영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회색분자'라는 표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세상이 항상 깔끔하게 양분되지 않음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분법을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로 간편하고, 둘째로 본인과 의견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안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부시가 그랬던 것처럼 논리의 탄탄함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상대방을 전략적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절반의 진실


나는 그 여자, 르윈스키 양과 성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다.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절반의 진실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 사이의 틈을 교묘히 악용한다. 허위 사실을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전체를 다 얘기하지 않아도 진실을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 (중략) 중요한 건 발언의 의도와 그 파장일 것이다. 그리고 절반의 진실이 갖는 파장과 의도 역시 거짓말처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며, 사악할 수도 있고 숭고할 수도 있다.
「가짜 논리」, pg.200

    거짓말은 찝찝하다. 그것이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혹여 거짓말이 탄로 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진실도 거짓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덜 수 있을뿐더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 물론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기에 구차한 변명에 코웃음칠 테지만 그래도 거짓말쟁이라는 낙인만큼은 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가장 흔한 예는 원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을 회피하기 위해 '일이 있다'라고 둘러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집에서 하루 종일 뒹구는 것도 일은 일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부득이하게 상대방과 만남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반면, 마치 투자 포트폴리오처럼 본인의 진술을 헤지하는 기술은 그 필요성을 실감하여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너무 애매모호한 발언은 파고들기 질문을 유발하여 결국 거짓말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앞서 만남을 회피하기 위해 '일이 있다'라고 했을 때 상대가 '무슨 일인데?'라고 물어보면 계획에 없던 중요한 일정을 꾸며내야만 한다. 그래서 진실도 거짓도, 막연하면서도 구체적인 최적의 지점을 찾기 위해 항상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 필자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많은 직장인들의 숙명이라 생각된다.



마무리


    책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77가지 논리의 오류를 완벽하게 숙지하여 빈약한 논리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저자가 의도하는 진정한 바는, 수많은 논리적 오류가 존재하니 항상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이러이러한 사람은 걸러라, 여차여차한 사람들의 특징' 등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인터넷 게시물이나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대개는 본인의 논리가 완벽하다는 확신에 차 있는 경우가 많고, 하늘을 찌르는 기세등등함에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그런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논리의 빈약성에 코웃음만 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부제 그대로, 세상에 난무하는 헛소리에 쉽게 휘둘리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인용 출처 - 줄리언 바지니,「가짜 논리」, 강수정 역, 한겨레출판, 2011

이미지 출처 - www.freepik.com, 유료 라이선스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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