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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vy Feb 02. 2022

팩트풀니스

다섯 번째 독서노트, 한스 로슬링


    한 아이가 초등학교 수학 시험에서 30점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은 이 아이를 위해 즉각적이고 집중적인 관심과 도움을 주어야 할까?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겨우 초등학교 수학에서 헤매기 시작한 이 아이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곧 수학과는 영영 작별 인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잠깐! 이 아이는 지난 수 차례의 수학 시험에서 모두 0점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이제야 수학에 대한 감을 잡은 것 같으니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0점이든 30점이든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잠깐! 이번 수학 시험은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한 옆반의 박모 선생님이 출제했는데 문제가 하나같이 수학 올림피아드 수준의 난이도였다. 그래서 학년 평균이 10점대에 불과했다고 한다. 만약 아이의 점수가 30점이라는 사실에만 몰두하여 담임 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곧바로 동의했다면 한스 로슬링(이하, 로슬링)의 팩트풀니스가 필요한 순간이다.



생각보다 살 만한 세상


전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A. 20%    B. 50%    C. 80%


    위 문제의 정답은 80%이다. 삼지 선다형 문제이므로 아무것도 모르는 고릴라에게 이 문제를 풀게 하면 정답률은 33.33%가 될 것이다. 한편 인간은 이보다 낮은 정답률을 기록했다. 즉, 우리는 편향에 빠져 세상을 실제보다 과도히 암울하게 인식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와 비슷한 문제들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지식인들의 정답률 역시 일반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나는 가난과 부, 인구 성장, 출생, 사망, 교육, 건강, 성별, 폭력, 에너지, 환경 같은 주제에서 세계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상황과 일반적 추세에 대해 앞서 보여준 것과 같은 사실 문제 수백 개를 만들어 전 세계 수천 명에게 제시했다. 복잡한 문제도 아니고, 함정이 있는 문제도 아니다. 관련 자료가 충분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만을 활용해 신중하게 만든 문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답을 거의 맞히지 못한다.
한스 로슬링,「팩트풀니스」, 이창신 역, 김영사, 2019, pg.17-18

    로슬링은 우리가 쉽게 일반화하고, 하나의 관점에 집착하고, 둘 이상의 수치를 비교하지 않거나 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극적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는 등의 본능 때문에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통계와 그래프를 통해 우리의 오해를 무자비하게 깨부순다. 그리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우리의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80%은 전기를 공급받고 있으며 전 세계 30세 남성이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니는 한편, 여성은 비슷하게 평균 9년간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것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전 세계 70억 인구 중 20%인 14억에 해당하는 인구가 전기 없이 살아가며 남녀 간 교육 격차가 존재한다. 또한, 작금의 미디어에는 전기는커녕 식수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일부 이슬람 문화권 국가의 여성들이 분명히 등장한다.

    세상을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미숙아라고 가정해보자. (중략) 모든 지표가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태라 계속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아기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중략) 상황이 나쁜 것과 나아지는 것 중 선택을 해야만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둘 다 옳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세계의 현 상황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팩트풀니스」, pg.103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기 시작하고 진실을 마주하면서도 자꾸 저자의 의견에 반감이 들고 불쾌감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전히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세상이 과거보다는 살기 좋아졌다는 의견은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는 선진국 국민뿐만 아니라 제3세계 국가의 국민 또한 우리의 생각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을 뿐이다. 이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세상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불편함을 덜어내고 로슬링이 제시하는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



팩트풀니스를 팩트풀니스하게 읽기


    팩트풀니스를 끝까지 읽은 다음에는 저자가 누누이 강조한 사실충실성의 관점에서 이 책 또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세상을 표현하는 지표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도 있을 것이며,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 소개된, 로슬링이 스스로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채택한 지표들이 정말로 핵심적이고 적합한 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세계 평화와 관련하여 IEP(경제평화연구소)의 세계 평화 지수 보고서를 확인하면 2008년에 대비하여 2021년에 인류는 무기 수출, 핵무기, GDP 대비 군비 지출, 정치적 테러 등 8개 지표를 크고 작은 수준으로 개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난민, 폭력 시위, 인접 국가 간 관계, 정치적 불안정 등 15개 지표는 이전보다 악화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전보다 악화된 15개의 지표는 차치하고 개선된 8개의 지표만을 제시하여 인류가 세계 평화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며, 단순히 악화된 지표의 수가 개선된 지표의 수보다 많다는 이유로 요즘 들어 세계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수치를 확인하기 전에 세계 평화의 관점에서 각 지표의 적합성과 경중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로슬링이 제시한 데이터 역시 이러한 검증 과정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마무리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발생 횟수는 약 30% 감소하였다.

    여전히 거의 매일 계속되는, 인륜을 저버린 살인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드는 것은 지금도 매한가지이다. 책을 읽고 달라진 점은 그 때문에 '요즘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따위의 근거 없는 비관적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섣부른 넋두리 대신에 관련 통계를 찾아보게 되었다. 당장 경찰청 통계를 확인해 보면 불과 1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연 1천여 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으나 현재는 연 7백여 건으로 무려 30% 가까이 살인 사건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몇 건의 살인 사건 보도만으로 세상이 미쳤다고 평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오히려 살인 사건의 발생 건수만 놓고 보면 우리는 훨씬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절망과 공포, 분노는 무지에서 비롯한다. 그러한 무지에서 눈을 뜨게 하여 부정적인 감정들의 근본 원인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이 책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힐링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인용 출처 - 한스 로슬링,「팩트풀니스」, 이창신 역, 김영사, 2019

이미지 출처 - www.freepik.com, 유료 라이선스 보유

참고 자료 - 

    a. IEP, Global Peace Index 2021, pg.35, Figure 2.4,

        https://www.economicsandpeace.org/reports/

    b. 경찰청, 경찰통계자료, 5대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

        https://www.police.go.kr/www/open/publice/publice0202.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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