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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Jun 01. 2022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5

가족도 다 좋기만 하진 않아.

엄마와 싸웠다는 친구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어떻게 엄마랑 싸우지? 엄만데?!

그랬다. 가족은 무조건이었다. 가족중심, 관계주의와 같은 고질적인 문화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랬고 나의 가족이 그랬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생각해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것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론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진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한번 만들어 보려구요. 그런 사람.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거에 나도 덩달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보려구요. 방향없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이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이 드라마의 주요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식사장면이다. 온 가족이 마당 평상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기도 하고 밭일을 하다가 둘러앉아 참을 먹기도 하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특별한 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기 할 일을 한다. 

나의 가족도 같았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상경했던 나의 아버지는 집안의 맏형이었다. 하나둘씩 동생들을 불러왔고 작은 월세방에 모여 살아야 했다.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부모를 고향에 두고 상경해서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형제들이니 서로가 얼마나 애틋할까. 하지만 아무도 표현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모였고 함께했고 그리고 흩어졌다. 나 역시 그런 가족 안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그런지 드라마 속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에도 저런 가족이 있을까 싶었다. 농경사회에서나 가능한 일 아닐까. 

눈을 뜨자마자 밭일과 싱크대 만드는 일을 쉼없이 하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곁에서 보조일도 하고 때되면 식사까지 마련해내는 어머니, 주중에는 각자의 생활권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여가시간을 보내던 자식들도 주말엔 밭일을 돕고 부모님의 일손을 거든다. 하지만 그들이 똘똘뭉쳐 한 마음일 수는 없다. 더 이상 '가족이니까'로 합리화할 수 없다. '가족이지만' 각자 존중받아야 할 무엇은 있다. 

철이 들면서...세상을 알아가면서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 많이 힘들었다. 부모지만 무조건 희생적일 수 없고 가족이지만 시기, 질투가 난무하고 피를 나눈 존재지만 남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 세상은 믿을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가족도 믿고 의지할 수 없다면 과연 나는 어디에 마음을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까...막막했다.

한때는 성인된 자녀는 무조건 독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내가 나이가 들면 부모는 늙어간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서 어린 시절의 부모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신체적 노화와 정신적, 정서적 퇴화를 감당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서운한 점도 많이 생기고 젊은 자식이 알아서 챙겨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켠에 크게 자리잡는다. 그런 상황을 직접 겪으면서 나조차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었다. 

늘 내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같던 부모가 하염없이 약해지는 모습을 볼 때 나도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가 짐이 될까 두려운 것은 나아중 일이었다. 당장 오늘, 아침 상을 차리는 것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사소한 것으로 부딪히고 서로 으르렁거린다. 

돌아보면, 걱정스런 마음이었고 서운한 마음이었는데 그 표현이 서툴러 잔소리가 되었고 간섭이 되었던 일들이다.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까지 바닥나 버려서 이 인연을 내가 끊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기억력이 흐릿해진 부모는 자식과의 대화에서 놓치는 것이 많다.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를 했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잘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서로 다른 결과를 두고 다툼이 생길 때가 있다. 자식은 아직 총명하기에 팩트를 가지고 화를 내고 있고 오해를 했거나 잘못 알아들은 아버지나 어머니는 당신들의 기질에 따른 리액션을 한다. 자신이 잘못 인지한 것에 대해 민망해하고 미안해하는 아버지, '나는 그렇게 들었다.'며 일단 우기고 보는 어머니 사이에서 격한 분노를 느끼는 나를 발견하면서 같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어떻게든 집을 떠나리라,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리라 다짐도 해 보았지만 나의 형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여유가 생겼나보다. 

내 부모의 단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자주 화를 내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상대방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아버지를 달래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된 후였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40년 넘게 살아내기가 버거울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짠한 마음에 울컥해지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불평, 불만은 어머니를 통해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익숙했다. 그런 아버지가 꼬장꼬장해지기까지 했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는데, 내가 미쳐 보지 못하고 알수 없던 어머니를 알게 되고 나니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유없는 버럭이 공감이 갔다. 

나이가 들면서 당신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것도 어려워지고 서운한 마음도 온 몸으로 드러내게 되니 제 3자의 입장에서 내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두 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식 입장에서는 더 화가 났고 고개 돌려버렸을 수 있는 모습을 객관적 입장으로 보게 되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아직도 부모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좋아하기로 작정은 했다. 부모님과 5분 이상 대화를 하면 짜증스런 말투가 나오게 되는 것은 여전하지만 누그러뜨리는 강도가 높아졌고 한 두마디 목소리가 커지면 빨리 알아채고 스스로 감정을 추스릴 수는 있게 되었다. 

가족이니까 당연한 것은 없다. 

가족이니까 작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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