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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Jun 04. 2022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8

내 고백에 대한 거절감 처리하기 



왜 툭하면 사진을 찍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두 사진이 찍고 싶어졌어요. 지금 이 시간 나는 이걸 먹는데 당신은 뭘 먹을까.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뭘 보고 있는지 왜 자꾸 알려주고 싶을까요. 날 궁금해 할리 없는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이런 마음이지...내가 밥 먹을 때 그 사람은 밥은 먹고 있나, 어떤 메뉴를 먹을까, 누구와 먹을까. 올 겨울엔 아무나 사랑할꺼라고 선언했던 염씨네 큰 딸, 기정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부터 달라졌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녀는 끝내 사춘기 딸이 있는 애인과 연애만 하고 있다. 딸이 성인이 되면 결혼하자는 남자의 말에 반발하지도 못하고 헤어지지도 못하면서. 

인간사가 원래 쪽팔림의 역사야. 태어나는 순간부터 쪽팔려. 빨개벗고 태어나. 

짝사랑을 고백하고 거절당한 기정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에서 현아가 왔고 동네 친구들이 모여앉아 고기를 굽고 위로주를 마신다. 요즘은 흔치않은 풍경이지만 나 어릴 적만해도 그랬다. 어울려 다니는 몇명 친구들은 각자의 집안에 수저가 몇 개인지도 알고 부모님이 어떤지도 속속들이 알았다. 혼이 나서 속이 상해도 상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사이, 그런 친구들이 누구 하나 힘들어하면 시간을 맞춰 모여 주었다. 먼저 손내밀지 않아도 알아서 와주고 별일 없었던 것처럼 먹고 수다떨고 웃으며 놀다가 헤어졌다. 그러면 또 괜찮은 것 같았다. 

간만에 드라마를 통해 보는 풍경에 가슴 한켠이 뭉클했다. 

사람이 사는 이유가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인간이 원래 한종자라 한놈을 만나도 깊이 만나면 공부 끝이야. 다 한종자야 다르다고 믿고 싶겠지만 결국 한종자야. 열등감, 우월감, 자기애, 자기혐오, 정도 차이만 있지 갖고 있는건 똑같애. 다 있어. 내가 만난 모든 남자들이 다 있었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끝이 난다. 그런 결말을 해피엔딩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내가 좋아해서 큰 마음 먹고 고백하면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거나 나를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답을 듣기가 쉽다. 어쩌다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온 동네 소문내서 그 고백에 거절하면 나만 "나쁜년"이 되는 상태를 만들어 놓고 고백을 한다. 

"한 놈을 만나도 깊이 만나면 공부 끝"이라고 말하는 현아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꼭 이성이 아니라도 사람에 대한 성찰을 깊이 하다보니 인간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고 말이다. 나라고 특별할 것 없고 나 역시도 내가 혐오하는 인간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디서 큰 소리로 떠들어 댈 용기가 사라졌다. 

 오늘도 불쾌한 경험을 했다. 병원에서 체혈을 하고 나와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평소 같으면 굳이 앉을 자리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체혈을 하고 난 직후라 혹시 어지러움증이 생길 수도 있어서 노약자석을 피해 뒷바퀴에 위치한 좌석을 찾아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내가 앉은 자리의 뒷자석에서 자꾸 헛기침을 하고 인기척을 내는 기운이 느껴졌다. 종점에 가까운 지점이라 처음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거슬렸지만 창밖을 내다보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점점 사람들이 많이 탔고 내 옆의 빈자리에 젊은 남자가 앉았는데, 내 뒷자석 남자가 내 의자의 등 부분을 주먹으로 마구 치는 것이었다. 

"미친새끼!!" 

인기척을 내던 놈이 발광하나부다 하고 모르는 척 해버렸지만 내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는 뒤를 돌아보더니 다음 정류장에서 곧바로 다른 빈자리를 찾아 자리를 바꿨다. 혹시라도 뒤에 있던 놈이 내 옆자리에 앉으면 소리를 질러버리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차마 옆자리로 오지는 못하더라. 

놈이 먼저 내리기를 바랬으나 기척이 없었다. 내가 벨을 누르고 자리를 옮기자 기척이 느껴졌다. 따라 내리기만 해봐라. 비장한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스가 서고 문이 열리자 천천히 내렸다. 앞에 앉았던 여성 한 명이 같이 내렸지만 그 놈은 결국 따라 내리지는 않았다. 안도의 숨을 쉬기도 했지만 분했다. 

안면도 없는 놈이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 화가났다. 신고를 할 수도 없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 갑갑했다. 상황을 모면하려고 더 애써야 하는 약자의 입장에 화가 났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관심이나 애정은 사랑이 아니다. 폭력이다. 제발 남자들아, 알아줘라!!!

이런 경험들이 자꾸 쌓여서 나는 남혐이 커지기만 한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도 상대에게 이렇게 불쾌한 경험을 주게 될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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