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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콩달 Feb 16. 2024

달리기

#1-12_난임 극복기

  난임시술이 실패로 끝나고 나자 진정한 휴직의 시간이 왔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드라마를 원 없이 봐도, 커피 마시며 멍을 때려도 일상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무엇보다 알람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내 일상이 자유로워졌다.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야 했던 생활에서 벗어난 것이다. 얼마나 꿈꿨던 자유인가. 물론 혼자가 아니다 보니 제약은 있었지만 전쟁 같은 아침 출근시간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았다. 

  난임시술을 쉬는 동안 결혼 전에 열심히 했었던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별명이 취미부자였던 나는 결혼 전에 골프, 승마, 달리기, 필라테스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있었다. 예전처럼 모든 것을 하기에는 불가능하고, 여러 가지 여건상 저예산으로 가능한 달리기가 가장 적합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웬만한 운동은 꽤나 하는 편이었으며, 어떤 운동이든지 시작하면 금방 익히곤 했다. 이런 내가 학창 시절 체력장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는 종목이 있었으니, 바로 오래 달리기이다. 항상 계주 선수로 뽑혔지만 지구력이 부족한 나에게 오래 달리기는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았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2020년. 라디오에서 김영철 DJ가 달리기를 하며 느끼는 쾌감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그 순간 이상하게 뛰고 싶어졌다. 당장 뛰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날 퇴근 후 바로 학교운동장으로 갔다. 어플의 도움을 받으며 인터벌 달리기로 '천천히 달리기 1분'과 '천천히 걷기 2분'을 번갈아가며 약 23분을 운동했다. 30분도 되지 않는 운동시간 동안 뛴 시간은 5분. 그런데도 너무 힘들어 땀을 뻘뻘 흘렸다. 그날 이후 주 2-3번씩 공원을 뛰기 시작했고 달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 순간마다 어플 속의 코치가 '포기하고 싶은 신가요?'를 외치며 계속 달려야 한다고 나를 강하게 이끌어줬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덕분에 '30분 쉬지 않고 뛰기' 목표를 이룰 수 있었고 30분을 쉬지 않고 뛰었던 그날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30분을 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용담, 이호, 애월, 조천, 함덕 해안도로 등에서 노을과 파도소리를 러닝메이트 삼아 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달리기는 나에게 생명수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잡생각에 견딜 수 없을 때,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을 때, 외로움에 힘이 들 때...... 그때마다 달리기를 했다. 바다를 보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밤에는 수면제 역할을 해주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달리기를 1년 반동안이나 하지 못했다. 결혼 전에는 연애하느라,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신혼생활을 즐기느라, 요즘은 난임시술을 하느라. 예전처럼 잘 달리지는 못하겠지만 다시 어플의 도움을 받으면서라도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 이번에도 달리기의 힘을 빌어 난임시술하며 힘들었던 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줘야겠다. 


예전 달리기를 하면서 봤던 용담해안도로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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