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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밧드 Oct 31. 2022

독서의 효능과 부작용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과목으로 독서교육을 하고 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지금까지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별 부담 없이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 단편소설 50선이라는 책으로 시작했는데, 학생들이 시큰둥했다. 그래서 21세기에 출판된 책들 중 「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독서 안내서 격인 책을 선정하여 읽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다음에는 「아주 사적인 독서」라는 책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다시 책은 도끼다」는 처음에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을 다룬다. 쇼펜하우어는 독서는 해로우니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 이유인 즉 책을 많이 읽으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또 지나친 독서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떨어뜨리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독서교육 교재가 독서는 해롭다고 한다. 요지는 이렇다. 책을 읽으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많이 읽으려고만 한다. 그러니 책을 읽고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양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으면 그건 헛수고일 뿐만 아니라 해로운 것이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쇼펜하우어의 글들 중 학생들이 공감한 구절들이 제법 있었다.

  . 문장이 난해하고 불분명하며 모호하다는 것은 그 문장을 조립한 작가 자신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응석에 불과하다.

  . 학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쉽게 말하고, 학식이 부족할수록 더욱 어렵게 말한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건 내 생각인데, 쇼펜하우어가 위의 문장들을 통해 공격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헤겔이 아니었을까 싶다. 두 사람이 같은 대학에서 강의할 때, 헤겔의 강의실은 수강생들로 북적였는데,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은 썰렁하여 폐강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고 한다.  

「아주 사적인 독서」는 소설 <마담 보바리>를 통하여 위와는 다른 방식으로 독서의 위험성을 말한다. 즉 건성으로 읽으면 괜찮을지 몰라도, 진지하게 읽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그 반대로 말했다. 다시 말해서 대충 읽으면 해롭고, 꼼꼼히 읽어야 한다고 했다.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인 엠마는 소설을 많이 읽었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소설에 나오는 대로 멋지게 펼쳐질 거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남편은 무능하고 야망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이다. 중산층이라 할 일도 없어 엠마는 권태와 우울증에 빠진다. 아이를 낳지만 육아는 전적으로 유모가 하기에 출산도 그녀의 권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러다가 외간 남자를 만나 불륜의 길로 들어서고, 그녀는 그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여기며 기뻐한다. 그러나 외간 남자는 떠나가고, 실의에 빠진 엠마는 자선활동과 신앙생활을 통해 살아간다. 불륜을 비롯한 엠마의 행위들은 사실 모두 책에서 읽은 것들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엠마는 다시 불륜 상대를 만나게 되고, 사치와 낭비로 파산하고, 결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을 너무 진지하게 읽어서 공상에 빠지고 현실 감각이 마비되어 결국에는 파멸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책을 진지하게 읽는 것이 그처럼 위험하다.’는 것이 「아주 사적인 독서」의 주장이다.  

독서 토론은 말만 무성하고 어설프게나마의 결론도 없이 끝났다. 방과 후 학교의 활동에 부여된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설 <마담 보바리>의 여주인공처럼 책에서 읽은 대로 공상 속에서 현실 감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엠마 또한 소설의 여주인공일 뿐이다. 소설을 읽은 후 공상에 빠질 수는 있지만, 그건 잠깐이다. 우리의 인생사는 준엄하기에 자신도 모르게 공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그렇다면 책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이 질문은 그 자체로 별 의미가 없다. 우리는 바쁜 인생을 살고 있다. 성장기엔 공부하느라, 성인기에는 일에 쫓겨 제대로 독서할 시간이 없다. 책이란 여유가 있을 때 읽거나, 독서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내서 읽으면 된다. 왜? 독서는 좋은 것이니까. 더구나 소설을 읽고 현실 감각을 잃어 파멸에 이를 사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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