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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밧드 Jan 14. 2023

애굽의 열 가지 재앙

통쾌한 이야기다. 백성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고 그들을 억압하는 통치자가 전능한 신에게 벌을 받는다. 벌의 종류도 다양하다. 개구리와 파리가 등장하고, 전염병에 우박까지 동원된다. 마지막에는 이스라엘 자손들 말고는 모든 장자들에게 죽음을 내린다. 이집트 왕은 자신의 장자가 죽자, 신에게 항복한다.

 

이 이야기는 쥐를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고양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고양이는 쥐를 잡았다 놓아주고 다시 잡았다 놓아주기를 여러 번 한 후에 죽인다. 넌 도망가 봤자 소용없어, 넌 다시 잡혀, 난 그만한 능력이 있어, 이제 인정하냐? 그러면 이젠 죽어야지. 그래서 최종적인 재앙 이전에 여러 가지 재앙이 필요했던 가보다.   

  

그러건 말건, 기독교인들은 이 이야기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자신의 곤경과 억울함을 언젠가는 신이 풀어줄 거라고 믿고 기도하며 힘겨운 현실을 견뎌낸다. 전능한 신이 필요할 때마다 그렇게 개입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전염병도 전쟁조차도 두려워할 게 못 된다. 그러나 견디다가 구출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쥐처럼 죽는다.    


왜놈들이 조선에 쳐들어 왔을 때 신이 이순신 장군을 보내 줬나? 그러면 조선이 일제에 멸망할 때 신은 어디에 있었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자신의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그걸 신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도 그에 못지않은 독재자였는데, 그는 천수를 누렸다. 신이 불공평한 건지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건지 헷갈린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잡아들여 강제노역을 시키고 노동력이 다하면 가스실로 보내 죽였다. 그때 60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역사는 그것을 홀로코스트라고 부른다. 그때 열 가지 재앙의 주최자였던 신은 어디에 있었을까? 니체의 말 그대로 신은 죽었든지, 아예 처음부터 없었든지 둘 중의 하날 거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된 건, 불신앙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거참!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높은 산에서 굴러내리다가 가까스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벼랑 끝에 매달렸다. 오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점점 팔에 힘이 없어진다. 나뭇가지를 놓치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추락할 것 같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구해 주세요." 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나를 믿느냐?" "예, 주님을 믿습니다." "믿음이 너를 구원할 것이니,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안고 푹신한 잔디에 사뿐히 내려앉게 하겠다." 그는 잠깐 생각해 보다가 산 위를 향하여 소리쳤다. " 거기 누구 사람 없어요? 사람 살려요!" 


인간은 광막한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존재다. 자연재해가 두렵고 못 믿을 게 사람이라서 신이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 이성이라는 걸 발견하고 과학이 발전하자 인간은 신을 세계 밖으로 추방했다. 사실 인간은 태초부터 홀로인 존재였고, 신은 인간과 함께 한 적이 없었다. 


열 가지 재앙 이야기는 가장 못 믿을 이야기들 중 하나다. 즉 그런 사건이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 이야기를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믿고, 무려 2천 년 동안 거기에 온갖 해석을 덧붙여 왔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이스라엘 자손을 빼고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일어났을 때, 당신이 외아들을 가진 이집트 백성이었면? 그때 그 신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난 이집트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요? 난 광주사태 때 대구에 살았다고요? 당신은 아주 강력한 아편을 맞아 사고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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