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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밧드 Jun 26. 2024

쌍경

제5화 바벨탑 이야기

G는 대홍수 후에 노아와 자손들에게 ‘생육하여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단일한 언어를 사용했고, 한 곳에 모여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며 높은 탑을 쌓았다. G는 인류의 언어가 같기에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G는 인류를 온 지면에 흩어놓고, 하나였던 그들의 언어를 여럿으로 혼잡하게 했다. 그리하여 인류는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지고, 지역마다 저만의 언어로 말하게 됐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독교의 한 목사가 바벨탐 사건을 해석하여 인터넷에 올린 것을 살펴보자. 중언부언하는 글을 요약하여 옮긴다.


 바벨탑은 인간의 잘못된 생각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미신이나 우상처럼 탑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오만의 탑을 쌓아 올립니다. 그러나 한 곳에 그들이 모여 살며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폐쇄성과 획일성이 그 당시 인류의 진정한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타인도 그들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볼 객관적인 사고도 지니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G는 인류가 정신적, 환경적, 지역적으로 다양한 환경과 생활상을 가질 수 있도록 인류의 말과 지역을 갈라놓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오만한 인간에 대한 심판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획일성과 편협함을 타파해 그들에게 다양성과 지역성을 부여한 사건이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2천 년 동안 Bible를 연구하면서 기상천외한 해석들을 많이도 내놓았다. 아무리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그들에게는 해석할 방도가 있다.


바벨탑 이야기는 즉각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떠올리게 만든다. 프랑스의 입장에서 모국어를 독일에게 빼앗기는 슬픔과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내 프랑스 국민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한국인보다 더 잘 이해하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 하에서 한글을 빼앗기고, 이름도 일본어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인류를 다양성과 지역성으로 이끌기 위해서 인류의 언어를 혼잡하게 흩어놓았다? 전쟁의 대부분은 소통의 부재로 일어난다. 소통이 되면, 인류는 싸움을 하는 대신 타협을 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주민들 간에 소음 문제로 살인까지 벌어지는 사건도 결국은 소통의 부재가 커다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 소음을 일으킨 자가 태국인이나 베트남 사람이라면, 소통 자체를 기대할 수 없으니, 어쩌면 살인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궤변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해볼 만하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간에도 단일한 언어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폐쇄성과 획일성이 고착됐다. 이에 그들의 언어를 세 개로 혼잡하게 하여 다양성과 지역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벨탑 이야기는 엄밀하게 말해서 G가 인류에게 행한 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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