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낳았다. 첫째로 나온 애는 전신이 빨갛고 털로 덮여 있어서 이름을 ‘에서’라 했고, 둘째는 에서의 발꿈치를 꽉 잡고 나와서 이름을 ‘야곱’이라 했다. 에서는 산에 가서 사냥하는 걸 좋아했고, 야곱은 집에 처박혀 있는 걸 좋아했다. 이삭은 고기 마니아였으니까, 당연히 에서를 더 좋아했고, 리브가는 집에 있는 야곱을 더 사랑했다.
어느 날, 야곱이 죽을 쑤고 있는데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 말했다.
“배고파 죽겠다! 그 붉은 죽 좀 줘.”
야곱이 눈도 안 깜빡하고 말했다.
“좋아. 형, 장자권 나한테 팔면 줄게.”
에서가 배고파서 정신줄 놓고 말했다.
“장자권이고 뭐고 배고프면 죽는데, 그게 뭐 소용이 있겠어? 팔자!”
야곱이 끝까지 확실히 하려고.
“그럼 장자권 다시는 주장 안 한다고 맹세해.”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권을 넘겨주고 죽을 먹었다. 이게 장자권을 그리 가볍게 여긴 결과다.
이삭은 나이 들어서 눈이 잘 안 보이게 되자, 에서한테 말했다.
“내가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 사냥 가서 별미 만들어 와라. 내가 그거 먹고 죽기 전에 네 축복해 줄게.”
그 말을 리브가가 몰래 엿듣고, 야곱한테 속닥거렸다.
“네 형이 사냥해서 별미 만들어 오면 네 아버지가 그걸 먹고 에서를 축복해 주겠대. 그러니 네가 빨리 가서 염소 새끼 두 마리 가져와. 내가 별미 만들어서 네가 아버지한테 갖다 드려. 그러면 네가 축복 받을 거야.”
야곱이 걱정하며 말했다.
“엄마, 형은 털이 많고 나는 맨질맨질한데, 아버지가 만지면 나 속인 거 바로 들키잖아. 축복은커녕 저주나 받을걸?”
리브가가 아주 쿨하게 말했다.
“얘야,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까 너는 빨리 염소나 가져와.”
야곱이 염소를 가져오자, 리브가는 능숙하게 별미를 만들고 에서의 옷을 야곱한테 입히고, 염소 가죽으로 야곱의 손과 목에 감싸줬다. 그런 다음 음식을 들려 보냈다.
야곱이 음식을 들고 가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이삭이 말했다.
“오냐, 네가 누구냐?”
야곱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맏아들 에서입니다. 사냥해서 별미 만들어 왔으니, 잡수시고 저 축복해 주세요.”
이삭이 약간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
“네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냥해 왔냐?”
야곱이 거짓말을 더했다.
“아버지의 하느님, 야훼가 도와주셔서 사냥을 빨리 끝냈습니다.”
이삭이 점점 의심스러워졌는지 말했다.
“가까이 와 봐라. 네가 진짜 내 아들 에서인지 만져 봐야겠다.”
야곱이 가까이 가자, 이삭이 그를 만져 보더니 말했다.
“음성은 야곱인데, 손은 에서 같구나.”
그래도 계속 의심하면서 또 물었다.
“너 진짜 내 아들 에서 맞냐?”
야곱이 뻔뻔하게 또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이삭이 별미를 먹고, 포도주까지 마신 후에 말했다.
“얘야, 가까이 와서 나한테 입 맞춰라.”
야곱이 입 맞추자, 이삭이 그 옷 냄새를 맡고 결국 야곱에게 축복을 해버렸다.
“내 아들의 냄새는 야훼가 축복한 밭의 냄새 같구나! 야훼가 너에게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주시기를 원한다. 수많은 민족이 너를 섬기고, 모든 나라가 너에게 굴복하며, 네 형제들도 네 밑에 있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 원한다.”
에서가 사냥을 끝내고 별미를 만들어 와서 이삭에게 갔다.
“아버지,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저를 축복해 주세요.”
이삭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너는 누구냐?”
에서가 “저는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말하자, 이삭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아까 고기를 가져온 건 누구냐? 이미 내가 축복한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에서가 이 말을 듣고 엉엉 울면서 간청했다.
“아버지, 저에게도 축복해 주세요!”
하지만 이삭은 말했다.
“네 동생이 나를 속이고 네 복을 빼앗아 갔다.”
에서가 울며 말했다.
“야곱이 나를 속인 게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전에는 내 장자권을 빼앗아 가더니, 이번에는 내 복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줄 복은 남겨두신 게 없나요?”
이삭이 답답한 듯 말했다.
“이미 네 동생을 네 주인으로 만들고, 네 모든 친척을 그의 종으로 삼았으며, 그에게 곡식과 포도주도 줬는데, 내가 너한테 해 줄 게 없구나.”
에서가 계속 울면서 “아버지! 저에게도 축복해 주세요!”라고 애원했지만, 이삭은 차갑게 말했다.
“네가 사는 땅은 기름지지 않고, 하늘의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며, 네가 칼을 믿고 살겠지만 네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열심히 몸부림치면 언젠가는 그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에서가 속으로 이를 갈며 혼잣말했다.
“아버지 죽으면 야곱을 죽여버리겠다.”
이 말이 소문이 돌자,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말했다.
“네 형 에서가 너 죽이려고 한다. 그러니까 당장 하란에 있는 내 오빠 집으로 가서 형이 화가 풀릴 때까지 거기 숨어 있어라. 형이 분이 풀리고 네가 한 일을 잊으면, 내가 사람 보내서 너 데려올게.”
근데 리브가는 야곱이 도망간 후, 다시는 야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와… 이 이야기는 진짜 기이하고 황당하다.
이삭은 축복하기 전에 두 번이나 “네가 에서냐?”라고 확인했다. 야곱이 맞다고 뻔뻔하게 대답했는데, 눈 어두운 이삭이 그걸 믿고 축복을 했다. 그래서 둘째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된 거다. 근데 이게 말이 돼? 이거 법정에서 다른 사람이 대신 사형 선고 듣고, 그 사람이 대신 사형당하는 꼴이다.
그리고 이삭, 속은 걸 알았으면 바로 축복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미 축복한 건 취소 못 해!” 이러고 넘어간다. 리브가의 사고방식도 참 이해하기 어렵다. 속여서 축복 가로채면 그게 유효하다고 믿는다? 대단하다 진짜. 에서도 이상하고, 야곱도 웃기지 않나? 장자권을 붉은 죽 한 그릇에 팔아먹다니.
당시 세계관 진짜 흥미롭다. 사람은 야훼의 축복을 받아야 사는 거라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이 사고방식이 모압 왕 발락과 예언자 발람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발락이 세 번이나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발람은 야훼의 명령에 따라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했거든.
이런 걸 보면 <창세기>의 저자가 우리를 속였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이 황당한 이야기를 진짜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니까. 심지어 사도 바울도 이 이야기에 속았고, 그 후에 기독교지도자들도 이 이야기를 진짜로 믿고 설교했다. 속여서라도 야훼의 축복을 받으면 된다고.
이건 물리적 폭력과는 다른 차원의 폭력이다. 이런 사고가 기독교인들에게 끼친 영향이 어땠을지 한번 생각해 보라. 신약에도 비슷한 언술이 있다. “천국은 침노를 받는데,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 여기서 침노하는 자는 사실 악인이다. 천국을 훼방하는 자들이란 말이다. 근데 많은 목사들이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차지한다!”고 설교한다. 속여서라도 야훼의 축복을 받아라, 침노해서라도 천국에 가라. 믿으시면 아멘 하세요!
야곱은 장자 축복을 가로채고 하란으로 도망가서, 거기서 삼촌한테 제대로 한 방 먹는다.
야곱은 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됐고, 7년 동안 무보수로 일해 줄 테니 라헬과 결혼시켜 달라고 했다. 삼촌은 그걸 받아들였고, 야곱은 무보수로 일했다. 근데 라헬을 사랑하니까 7년이 며칠처럼 지나갔단다. 그리고 결혼 첫날밤을 치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라헬이 아니라 첫째 딸 레아가 신부였던 거다. 헷갈렸던 건지, 얼굴 가리개 때문에 속았던 건지, 어쨌든 야곱은 제대로 당했다.
사실 이 사건에서는 두 사람이 속았다. 야곱뿐만 아니라 라헬도 아버지에게 제대로 속은 거다. 이걸 장자의 축복 사건과 비교해 보자.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둘째 아들인 야곱이 축복을 받았다. 근데 성경에서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축복받은 거라고 말한다. 그럼 라헬의 입장은?
라헬은 야곱과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 서약서에도 분명 라헬과 야곱이 결혼한 걸로 적혀 있었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첫날밤을 치른 건 언니인 레아였다는 거다. 이 경우, 야곱의 진짜 아내는 누구냐고? 형식과 내용이 충돌하는 이런 황당한 상황이다. 이삭의 축복 사건에서는 결국 야곱이 축복을 받은 걸로 판정했다. 비록 야곱이 형 에서를 사칭해서 축복받았지만, 그 축복을 받은 건 야곱이니까 말이다. 여기선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한 거다.
근데 야곱의 삼촌 라반은 형식이든 내용이든 둘 다 인정해 버렸다. 무슨 소리냐고?
라반은 야곱한테 "우리 동네는 둘째 딸을 먼저 결혼시키는 법이 없다"면서, "7년 더 무보수로 일하면 라헬이랑 지금 당장 결혼시켜 줄게"라고 제안했다. 야곱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졸지에 두 아내를 거느리게 됐다. 물론 다시 7년 동안 공짜로 일해야 했지만. 이 사건에서는 형식과 내용 둘 다를 인정한 셈이다. 이삭의 축복 사건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거다. 그런데 이삭도 에서한테 야곱과 거의 비슷한 축복을 해 줄 수 없었을까? 기독교인들은 "그건 야훼의 뜻이 아니었어!"라고 할 거다.
여기서 많은 목사들이 야곱이 14년 동안 라헬을 위해 일했다고 설교한다. 그 정도로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다나 뭐라나. 근데 그건 그 목사들이 성경을 건성으로 읽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야곱은 7년 동안 무보수로 일한 후에 두 여자와 결혼했고, 다시 7년을 공짜로 일한 거다. 이건 삼촌 라반이 첫째 딸 레아를 '끼워 팔기'한 거랑 다름없다.
근데 야곱은 인생의 고비마다 사람을 속이지 않으면 자기가 속는 인생을 살았다. 네 명의 여자에게서 열두 아들을 낳았고, 그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특히 사랑했다. 근데 그 사랑 때문에 나머지 열 명의 아들들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그 사건은 야곱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