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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물들다 Feb 15. 2023

1. 에스프레소, 서울

민들레 맛처럼 목울대를 적셨던 에스프레소가 향기가 되다

겨울비가 바람을 몰고 오는 듯 시리게 추운 겨울이었다.  

예비고사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 4년제 정규대학이 어려울 거 같았다. 오빠 언니들은 졸업 후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있었지만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께 재수라는 말은 어림도 없었다. 시골에서 적당히 2년제 학교를 마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시골서 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마음의 요동이 파도만큼 높았고 이루고 싶은 가고자 하는 길이 벅차고 힘들지라도 그 길을 가고자 했던 나에겐 지금의 겨울이 시련보다 희망이었다.


퇴근하고 들어오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읍내 농협에 자리를 알아보고 있으니 그리 알거라."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버지, 저 서울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그 소리에 식구들이 당황해서 모두 숨을 죽인다. 경찰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교육열이 높으셔서 육 남매를 근처 도시로 모두 유학을 시키셨다. 엄마가 "야가 뭔 소리를 한다냐" 하며 나를 가로막고 서신다. 성정이 불같은 아버지를 혹시 몰라 막아서신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 소리 없이 나를 쳐다보셨다. 뜻밖의 분위기에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자식들이 다 시골서 살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 아롱이다롱이가 다르듯 자식이래도 다 각자 품이 있는 거겠지 생각하신건지 가까운 서울에 친척은 없으니 아버지가 방도를 찾아보마 하셨다. 뜻밖에 먹구름 없이 허락을 받고 나니 미안하고 죄스러움과 안도가 겹쳐 눈물이 쏟아졌다. "쓸데없이 눈물 빼지 마라. 울 일은 두고두고 많다."



봄이 기지개를 켜며 나무에 새순들이 돋아 나오듯 손짓할 때 친구와 서울행을 감행했다. 얼마 전까지 항만청장으로 계셨던 아버지 친구분이 서울로 다시 올라가셨는데 그 집 막내딸이 우리 둘째 언니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며 단짝이었고 어머니들도 친분이 있어 자주 왕래하며 친척보다 가까운 사이였던 터라, 연락이 닿아 언니네 오빠가 다니던 학교 근처 신촌에 집을 구해 주셨다.


신촌 노고산동 깎아지른 비탈길이 얼마나 까마득하던지 이 길을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함석집들과 주택들이 양옆으로 즐비하게 자리들을 잡고 있던 길 맨 끝 한옥집. 그 집 문간방이 우릴 기다렸다. 간단한 옷가지와 책 몇 권만 가지고 온터라 필요한 이불이며 자잘한 살림들은 구입하기로 했고, 갓 상경을 해서 준비할게 많았다. 다시 비탈길을 내려가려 대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저 밑동네는 명문대학의 성지로 딴 세상을 품고 선명하게 빛을 뿜으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같은 공간 안에 전혀 다른 색채를 가진 곳들, 안개 자욱한 미지의 공간 속 아득한 높이에 내가 서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다행히 배달을 해주신다고 한다. 간단히 저녁을 학교 앞 식당에서 때우고 이대 앞 사거리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학생들로 실내가 꽉 차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앉으니 웨이터가 메뉴판을 건네준다. 커피종류가 이렇게 많았던가 당황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니 친구가 날 쳐다본다. "이름이 예쁘잖아." 

종지만한 하얀 잔에 담겨있던 검은 액체가 소꿉놀이 하듯 날 쳐다본다. 민들레처럼 쓴 커피가 목울대를 타고 오래도록 내려갔다.


노고산 비탈길을 다시 오르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 길을 오르내리며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험하고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생채기가 돋더라도 이 선택을 후회하지 말자. 낯선 방에 누우니 엄마 생각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첫날 서울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매서운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그때 에스프레소 맛을 떠올린다. 세월이 흐르고 쓴 맛의 긴 여운이 혀를 지나 목울대를 향기로 가득 채울 때 에스프레소는 나의 향기가 되어 삶에 나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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