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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Feb 07. 2024

Reading Chair

리딩 체어를 샀다. 특별할 거 없는 작은 의자이지만 사기로 결심한 것은 꽤 의미심장한 결정이었다.

이사를 가야 할까/ 꼭 가야 하나/ 가야 할 거 같아/ 그냥 집을 좀 고쳐보는 건 어떨까/ 고치느니 그냥 이사를 가지라는 생각을 되돌이표의 늪에 빠진 것처럼 반복하기를 2년 가까이하며, 무엇보다 당장 하기 힘들었던 것은 새 가구를 들이는 일이었다.


나의 취향 따윈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공부만 하다 결혼을 했고, 남편이 혼자 살던 스튜디오로 들어와 결혼 전부터 쓰던 살림을 그대로 썼다. 첫 아이를 임신해 만삭의 몸으로 이사 왔던 이 집에서 둘째 아이까지 낳아 키우는 동안 장만했던 새로운 살림살이는 대부분 아이들의 필요와 취향에 따라 늘어나거나 각색되었다. 이제 두 아이는 커서 알록달록한 장난감보다는 자신만의 공간을 더 원하는 나이가 되었고, 나 역시 선호도가 분명한 취향을 갖게 되며 집 안 구석구석 맘에 안 드는 것들이 늘어갔다. 그러나 이사라는

것이 아이들의 학교 문제부터, 교통편, 재정적인 부분까지 결코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또 내가 결정하기만 한다고 파바박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기에 나의 마음은 모든 사소한 결정에도 끊임없이 갈팡질팡했다. 무엇을 사야 되거나 바꾸고 싶다가도 ‘아니야, 나중에 이사 가면 새 집에서, 그냥 전처럼 싸고 대충 좋은 거 말고 정말 내가 원하는 걸로, 오래 쓸 수 있는 걸로 살 거야 ‘ 하고 미루기를 여러 번, 그 사이 자기도 버틸 만큼 버텼다는 듯 낡아버린 집은 하나 둘 고장 나기 시작했다.

 

이왕 고치는 거 이 참에 돈을 좀 들여서라도 정말 원하는 스타일로 싹 고쳐 오래오래 살아볼까. 아니야. 괜히 그랬다 이사 가게 되면 아까우니 정말 고장 난 것만 딱 고칠까.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뭐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을 지경이 되었을 때, 나의 복작거리는 마음과는 달리 비교적 잠잠히 있던 남편은 어느 날 일 해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알게 됐으니 지금이 제일 좋은 타이밍이라며 집을 수리하자고 했다. 남편은 꼭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음을 버리자고 했다. 지금까지 행복한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 집을 꼭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잘 살다가 정말로 좋은 집을 만나면 그때 가서 또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그 일 하는 분을 모셔왔고, 나는 리딩 체어를 샀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 때문에 지금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결국엔 그것이 또, 그저 싸고 대충 좋은 의자를 사드리는 걸 지라도. 어쨌든 지금은 읽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쯤은 알게 됐으니까. 실존 인물도 아닌 소설 속 캐릭터가 했던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는 사람이 될 것 (정세랑-시선으로부터)’이라는 말을 그 어느 누가 증명해 낸 이론보다도 더 간절히 믿으면서 그 의자에 앉아서 끊임없이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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