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재밌는 거 없나. 왜 이렇게 지루하지.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난 지루한 적이 언제였더라. 생각이 안 날만큼 난 지루해 본 적이 오래되었다. 시간이 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은 늘어나긴 해도 좀처럼 줄어들진 않고 있으니까. 물론 귀찮은 적은 많다. 막상 시간이 생겨도 귀찮음에 쓸데없는 짓을 하며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적은 많았으니까. 지겨운 적도 많다. 내 인생인데, 분명 나의 인생인데 매 번 먼저 달려 나가는 생의 뒤꽁무니를 따라잡느라 허덕거리다 지칠 때마다 ‘아, 지겨워 정말’ 하고 되뇌니까. 그러나 그 두 상태 모두 지루한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에게 있어 지루하다는 것은 공감하며 위로해 줄 수 있는 상황보다는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러운 것에 더 가깝다. 그러나 언니에게 그런 말을 할 순 없다. 행복하지 않은 쪽에 더 가까운 심리 상태에서 하는 말임을 알고 있으니까. 무턱대고 ‘지루하다니 좋겠다’ 따위의 말을 할 순 없는 것이다.
나에게 지겹다는 말은 짜증 난다라는 말이랑 뉘앙스가 비슷하다. 짜증 난다는 말을 뱉는 동시에 짜증이 더 확 올라오는 거 같이 지겹다는 말 또한 내뱉음과 동시에 한층 더 강하게 지겨워지며 모든 것을 딱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언니가 지겨운 게 아닌 정말 지루한 거길 바란다. 지루한 거면 이런저런 제안거리가 있지만 지겹다고 하는 거면 무언가 한 층 더 속수무책인 느낌이니까. 어차피 지루할 틈 없는 내가 지겨운 건더 많이 할 테니 언니는 그저 조금 지루해하다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겨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