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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Mar 28. 2024

외할머니의 이름

어느 날 백수린 작가의 책에서 할머니가 돈 봉투에 짧은 메시지를 적어서 건넸다는 대목을 읽다가 생각났다. 맞다, 나의 외할머니는 선물로 돈을 주실 때면 항상 당신의 이름 석자를 적어놓곤 하셨는데. 긴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 봉투 위에  쓰기 책에 나올 듯한 궁서체로 쓰여 있던 이름, 이. 순. 금. 그때는 왜 그냥 ‘외할머니가’라고 쓰지 않으셨는지 매 번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 시절에 통용되던 관습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에서야 문득 드는 생각은 그렇게라도 쓰지 않으셨다면 이름 쓸 일이 과연 얼마나 있으셨을까. 당신의 이름 보다도 ㅇㅇ댁, ㅇㅇ이네 엄마, 엄마, 할머니라는 호칭으로 훨씬 더 긴 세월을 사셨을 그분을 나 역시 외할머니라는 호칭 외에 성함을 붙여 써 본 일은 손에 꼽는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봉투에 적힌 외할머니의 이름을 본 적 없었더라면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가물가물한 그분의 이름을 아예 잊었을까.


터울 큰 7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늘 바빴고, 나이가 많았고, 기운이 없으셨다고 했다. 나의 어릴 적 기억 속의 외할머니도 크게 다르진 않다. 나이가 많으셨고, 바쁘셨다. 엄마가 결혼하기도 전에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내가 처음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이미 셋째 외삼촌 댁에서 살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외할머니와는 가끔씩 친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맡겨져 자고 오던 밤들이라던가, 우리가 온다며 이것저것 준비해 놓고 기다리던 할머니의 음식 같은 추억은 없다. 그 시절 가장 익숙한 외할머니 모습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양말을 개키고 계시던 모습, 그리고 그 주위로 이미 반듯하게 개어져 있던 다른 빨래들. “아유, 엄마 그냥 두라니까 그걸 다 개고 계시네 “ 미안함 섞인 엄마의 타박하는 목소리. 내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가야지” 하시던, 꼭 하셔야 할 일도 없는데 뭘 그렇게 맨날 서둘러 가시냐고 더 있다 가시라고 엄마가 그래도 항상 아빠가 퇴근하시기 전에 떠나시던 외할머니. 엄마가 어떻게 가시려고 그래, 하면 “버스 타고 가지!” 대답하시던 할머니.


미국으로 이민을 온 뒤, 잠시나마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저런 상황들로 엄마는 미국에 방문 중이시던 편찮으신  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왔었다. 나 이외의 세계엔 별로 관심 없던 철없던 고등학생 시절, 아픈 할머니가 와 계신다고 데면데면하던 내가 갑자기 살갑게 굴었을 리 없고 같이 살았다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로 생각나는 일들이 없는데 선명히 기억나는 한 장면은 어쩐 일로 집에 할머니와 나만 남아있게 된 어는 날, 방에 계시다 나오신 할머니를 어둑어둑한 부엌에서 맞닥뜨렸던 순간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내가 했던 말은, “할머니, 커피 타 드려요?” 할머니에 대해 잘 몰랐지만, 확실히 알았던 사실 하난 할머니는 믹스커피를 정말 좋아하신다는 것. ‘그려라, 한 잔 타주라 ‘ 하며 활짝 웃으셨던 할머니.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는 끓기를 기다리며 컵에 믹스 커피 한 봉을 털어놓고 뜨거운 물을 어디까지 부어야 할지 몰라 조마조마하던 마음,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너무 싱겁게 타진게 아닌 지 걱정되던 마음, “잘 탔다" 하며 웃으시던 할머니를 마주 보며 머쓱하게 웃던 나.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와 단 둘이 가진 유일한 추억이 고작 믹스 커피 한 봉이라니.


외할머니는 장수하셨다. 거의 백 살 언저리까지 사신 걸로 기억한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기억은 결혼하고 한국에 방문하여 할머니가 계시던 요양원을 들렸을 때인 거 같다. 뭘 사가냐고 했을 때 인제 커피는 안 되고 단 걸 좋아하시니 식혜랑 수박을 사가라고 했던가. 늘 긴 머리를 정갈하게 쪽지고 계셨던 거 같은데 소년같이  짧은 머리를 하고 계셔서 놀랐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았던 흰 봉투 위 조금은 힘이 빠진 듯한 글씨체로 적혀있던 이름, 이순금.


지금에서야 알 거 같고, 인제 서야 겨우 헤아릴 수 있을 거 같은 말들, 말과 말들 사이 미처 말로 옮겨지지 못한 채 켜켜이 쌓여있던 감정들, 이름 석자를 꾹꾹 눌러쓰셨을 때의 마음들과 바람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워낙 살갑지 못한 성격이라 얼마나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만은 “할머니, 더 있다 천천히 가세요.”라는 한 마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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