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좀비처럼 마지못해 일어나는 아침에 그나마 기운을 차릴 수 있는 이유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혼비 작가는 퇴근하는 기쁨이 너무 커서 출근을 멈출 수 없다고 그랬던가. 나는 커피 마시는 기쁨이 너무 커서 아침잠에서 깨는 것을 멈출 수 없다고 해야 할까. 물론 나는 오후 몇 시 이후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거나, 그 이후에 마시면 잠을 못 잔다거나 하진 않다. 그러나 이미 분주한 하루를 보낸 후 마시는 커피와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마시는 뜨거운 커피는 사뭇 다르다. 하루의 저뭄은 커피의 여부에 상관없이 끝을 향해 나아가지만, 하루의 시작은 커피 없인 활짝 열릴 수 없는 느낌이랄까.
아침 루틴을 열거해 볼까. 잠에서 깨면 일단 핸드폰 알람 스누즈 버튼을 누른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앞으로 고꾸라져 머리를 박고 앉은 채 땅이 꺼질 거 같은 한숨을 쉰다. 알람을 완전히 끌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고꾸라진 채 다시 잠에 들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향하면서야 비로소 알람을 끈다. 샤워가 끝나면 옷을 챙겨 입고, 간단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대충 말린 뒤 부엌으로 향한다. 커피를 만들어 텀블러에 담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싸 갈 물과 과일을 준비한다. 여분의 과일은 아침으로 먹으라고 접시에 따로 담아 식탁에 올려놓는다. 나머지 아침과 점심 도시락은 주로 남편의 몫이다. 나의 점심을 챙긴다. 가방과 텀블러를 들고 집 밖으로 나와 차로 향한다. 시동을 걸고 벨트를 매고 차를 출발하면 드디어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진하고 따뜻한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마지막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잠도 함께 내려간다. 내내 서두르던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된다. 앞으로 길에서 펼쳐질 교통체증이나 이후 있을 주차 전쟁 따위 어차피 내 힘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단념하고 커피를 즐기는 편을 택한다.
퇴근 후의 루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의 하루를 물어보고, 숙제를 챙긴다. 저녁을 준비하고 식사를 마치면 아이들의 피아노 연습을 챙긴다. 요일에 따라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이 저녁 전, 후로 있어 데려다주고 데려 오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보통 피아노 연습을 끝으로 내가 살펴야 하는 굵직한 일과가 마무리된다.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종일 긴장되 있었음을 인지한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씻고 잘 준비를 한다. 하루 종일 달린 기분이 들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면, 그날은 읽을 시간이 없어서이다. 책을 집어 들고 한 페이지라도 읽을 수 있는 날은 하루종일 소모되어 구석에 쭈그러져 있는 나에게 바람을 넣어 일으켜 주고 어깨에 내려앉은 먼지들을 탈탈 털어준 뒤 등을 토닥여 주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커피도, 책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며 돌봄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롯이 나만의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나의 취향이나 의견을 살피는 일은 흔치 않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물론 나름의 보람이 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살펴야 함엔 변함이 없다. 나의 취향대로, 나만을 위해 만든 커피를 마시고, 책에서 이야기들과 문장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설레일 때 아직 나 임을 느끼며 행복해진다. 오늘은 아침에 커피도 마셨고, 책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라져 버리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게다가 심장을 뛰게 하는 좋은 문장들도 많이 만났다. 새삼 내가 이런 것들로 이렇게나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