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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링 Apr 21. 2022

몰래 먹는 맛

유튜브 채널 ⟪오피니언⟫의 남자들

토요일 아침, 바나나를 우물거리며 유튜브를 틀었다. 어젯밤 켜놓은 화면엔 남자 넷이 밝은 옷을 입고 옹기종이 앉아 있다.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남자 넷이서 자신의 연애관을 밝히는 유튜브 채널 오피니언이다.


만약 이들이 각자 개인 유튜버로 활동했다면  정도의 매력어필은 가능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도 넷의 합이 좋았고, 남자가 여자친구 때문에 질투나는 순간 TOP 7이라는 제목의 수다를 들을수록 달가운 혼란이 찾아왔다. 숱한 연애 채널과는 달랐다.


오피니언 본격적으로 고민을 상담해 주거나 자신의 의견만을 밝히며 ‘좋은 여자 ‘좋은 남자 대해 정의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게 각자 의견을 밝히고는 ‘선택은 여러분의 이라는 말로 끝났다. 얼굴부터 착장, 대화까지 산뜻했다. 마지막엔 여러분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달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끝무렵엔 사뭇 근엄했던 표정이 풀리다 못해 광대가 아팠다.


단정하고 웃음이 예쁜 영도는 듣기 좋은 광주 사투리를 쓰며 사슴같은 얼굴로 잽을 날렸다. 술자리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 이목을 끌 타입이었다. 옆구리를 쿡 찔러 같이 초코에몽 사러 나가고 싶은 남자. 그게 영도였다. 얌전한 얼굴로 서슴없이 취향을 밝히다가 조곤조곤한 말투로 “너무 좋지 않니?”라고 할 때마다 그가 말하는 샤랄라하고 아담한 페어리계의 여성이 될까 싶었다.


전혀 눈길이 안가던 영진도 갈수록 호감이었다. 영진의 경우, 곧고 넓은 어깨가 시작이었다. 그는 여사친이 끊이지 않을 용모의 사내였으나 뜻밖순애보. 머릿결이 고운 사람이 좋다는 영도와 영진의 얘기를 들으며 연노랑의 산발 머리를 끌어내렸다.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엔  2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날라리 같던 현서는 회차가 지날수록 진중해졌고, 취중 토크에서 그의 매력은 정점을 찍었다. 주로 무채색의 핏한 셔츠를 입고 진행을 도맡던 현서가 몸을 베베 꼬며 이응을 남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갭모에의 표본이었다. 그에 비해 썸녀가 물을 쏟으면 물을 혼낸다던 찬웅은 전형적인 익살꾼처럼 보였다.


  모두 기본적으로 성실한 품성에 장난기가 넘쳤다. 어느 시청자의  따나 '어떤 여자가 와도   중에   쯤은 자기 스타일일법한 남자들만 모아놓고 여자들이 사실 제일 궁금해하는 주제들에 대해서 말하니까  들어올 수가 '었다. 그들  외적으로 눈길이 갔던건 영도 뿐이었다. 그와 별개로 한명 한명을 알아갈수록 무리에 대한 호감도 자체가 급상승했다. 꽃다발 효과랄까. 함께하니 아름다움이 배가 되었고, 그렇게  안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즉사했다.


그들의 토크는 댓글창을 폭발적으로 달구며 은은한 팬덤을 형성했고, 난 새벽 두 시에 발을 동동거리며 키득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과 실시간으로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 상상연애에 끝은 없었다. 끝이 있다면 그건 다소 헛헛한 아침이었다.



남의 연애사를 들으며 눈을 빛내고, 연애 유튜버를 번갈아 구독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애정씬만 접어놓고 보던 나는 스무살 무렵부터 그게 부끄러웠다. 연애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을 알게 된 뒤로 그랬다. 어떤 사람들은 연애보다도 자기 계발에 열심이었고, 연애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남자에 대해 얘기하고 나면 괜시리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럴 때마다 내가 초라해졌다. 그 후엔 사람을 봐가며 연애 얘기를 물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아직도 흥에 못이겨 기어코 ‘이상형이 있냐’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성에겐 오해를 살 수 있는 질문이라 처음엔 자제한다.) 그럼 나같은 류는 눈을 빛내며 반문한다.

“외적으로요 아님 내적으로요?”

난 씨익 웃으며 답한다.

“둘다요.”

그때부터 우린 킬킬대며 수학여행 바이브로 친해질  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딱히 없는  같아요.”라고 하거나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소 정숙한 대화가 오간다.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 취향같은. 리액션이 좋으면 가끔 일방적으로  이상형을 떠벌리기도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이다.


예전부터 좋아하는  숨기지 못했다. 금방 식는 애정이 민망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할 때가 가장 즐겁다. 떠벌리다 보면 친구도 생겼다. 고등학교 때는 옆반 슬이와 함께 입을 틀어막고 엑소 카이의  영상을 시청했고, BL만화(남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장르) 꽂혔을  알고보니 오랜 팬이었던 친구와 수줍게 링크를 나눴다. 기쁨과 기쁨이 만나면 짱짱 기뻤다.


조금이라도 기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 아무리 콘텐츠가 많고 이야기가 넘쳐나도, 진정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드물다. 하물며 누군가를 보고 잇몸이 건조할 정도로 웃을 수 있다면 자처해서 마켓팅 머신이 되고 싶다. 그래도 야밤에 두 손모아 연애 유튜브를 보는건 밤에 넷플릭스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끌어안고 퍼먹는 것 같다. 오피니언을 카페에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친구랑 함께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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