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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산 Dec 09. 2021

지옥의 가장 무거운 죄

<신곡>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는 지옥의 문에 들어섭니다.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정령이 그를 이끌어 나선형 구조의 지옥을 내려갑니다. 내려갈수록 더 무거운 죄를 진 자들이 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죠. 


발길 닿는 곳마다 비명과 비탄입니다. 음란의 죄를 지은 자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바람에 휩쓸려 다니고, 이단자들은 불타는 관속에서 몸을 태우고, 폭력을 행사한 죄인들은 펄펄 끓어오르는 피의 강물 속에 잠겨 있습니다.  단테는 두려움에 떨며 내려 갑니다.


마침내 지옥의 밑바닥입니다. 그런데 지옥의 마지막 원이라고 부르는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귀를 찌르는 비명과 원성도 들리지 않고 악마의 웃음소리와 케르베로스의 울부짖음, 역청와 유황의 고약한 냄새도 없어요. 그냥 고요뿐입니다. 


"발밑을 조심하거라."


베르길리우스가 말합니다. 단테는 발밑을 보고서야 꽁꽁 얼어 유리처럼 보이는 호수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혼들이 얼음 위로 얼굴만 내밀고 있죠. 납빛 얼굴에 이빨을 딱딱 부딪치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추위에 얼어 서로의 몸을 옭아맵니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해요.


이들은 누구일까요. 누구길래 지옥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벌을 받는 걸까요. 갑자기 한 가닥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 덕분에 얼굴이 살짝 녹은 죄인 한 명이 단테를 향해 외칩니다. 


"눈물이 얼어붙기 전에 잠시라도 이 가슴 적시는 고통을 토로하게 해주오."

"그대가 누군지 말해 다오."

"누군가를 배신하게 되면 곧바로 그 육신을 악마가 빼앗고 영혼은 이리로 떨어지게 되지요."


이들은 배신자들이었습니다. 다른 죄는 죽고 나서야 심판을 받는 데 반해, 배신을 저지르면 그 즉시 영혼이 지옥의 밑바닥에 쳐박히고, 육신은 죽는 날까지 악마가 차지하게 됩니다. 배신자들은 악마가 돼버리는 셈이죠. 


<신곡> 지옥편의 한 장면입니다. 단테는 형법에 기록된 수많은 죄들보다 배신이 더 무거운 죄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죄가 배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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