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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산 Dec 10. 2021

한국인이 체념적이라고?

<아리랑>

1937년 중국 연안. 중국 혁명을 취재 중이던 미국 언론인 님 웨일즈는 호위병으로부터 낯선 남자가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초여름 밤입니다. 임시 문으로 사용하고 있던, 솜이 든 푸른색 커튼을 학자의 손처럼 여윈 손이 밀어 젖혔습니다. 촛불에 드러난 그의 얼굴은 윤곽이 뚜렷한 것이 묘하게도 중국인 같지는 않았고, 반스페인 풍의 사람처럼 멋이 있었죠. 그가 웨일즈에게 물었습니다. 책으로만 배워 발음이 이상한 영어였어요.


"이 편지를 제게 보내셨습니까?"


애타게 찾던 사람. 얼마 전 웨일즈는 연안의 노신도서관에서 영문책자를 빌려간 사람들의 명단을 조사했고, 여름 내내 모든 종류의 영문 책자와 잡지를 수십 권씩 빌려가는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죠. 영어로 대화할 사람이 절실했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인 혁명가라는 이 남자는 편지에 답장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불쑥 찾아온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자료를 몇 가지 가지고 왔습니다."


초여름이지만 추웠어요. 만리장성에서 50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산 속이라서 손에 경련이 일 정도였죠. 웨일즈는 남자에게 작년 여름을 얘기했습니다. 한국에 놀러 갔는데 갑자기 큰 홍수가 나서 소, 돼지, 닭, 집들이 흙탕물 속으로 마구 떠내려가던 기억을 말이죠.


"한국의 시냇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아십니까?"


남자의 질문에는 향수가 배어 있었어요. 하지만 곧 우울한 얘기를 꺼냈죠.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강에서 투신자살 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죠. 하지만 요즘은 자살마저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일본 경찰이 강물을 내려다보는 사람을 감시한답니다.”


웨일즈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나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기보다는 자살을 택하려는 사람에게 마음을 줄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유순하고 체념적입니다.”


웨일즈는 한국인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키가 크고 강인한 한국인들이 안짱다리의 짝달막한 일본인 간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 생물학적으로 걸맞지 않는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남자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잘못 보셨군요. 1910년 이래 한국 사람이 왜놈들과 싸우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습니다. 이것은 기나긴 이야기입니다. 한반도에서 저항이 불가능해지자 만주에서 싸웠고, 수천 명의 투사들이 투옥되거나 처형당했습니다. 감옥은 언제나 만원이죠. 하지만 한국 사람은 결코 체념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참아 왔던 사람이 터뜨리는 분노보다 더 큰 분노는 없습니다. 유순한 소를 조심하세요.”


남자는 웨일즈에게 한국과 일본의 정황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이야기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김산. 이 이름은 그의 대여섯 개 가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님 웨일즈의 르포 <아리랑>의 첫 장면입니다. 저는 책꽂이에서 이 책을 볼 때마다 막사의 커튼을 열어젖히는 김산의 여윈 손가락과 구릿빛 얼굴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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