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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Nov 23. 2022

서로가 서로의 부분집합이었을 모든 혈육들을 위하여

<쁘띠 마망>, 셀린 시아마 (2021) 리뷰

쁘띠 마망 (2021)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조세핀 산스, 가브리엘 산스

별점 4.5/5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 ‘마리옹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온 ‘넬리’. 어린시절 엄마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 ‘넬리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마리옹 만나게 된다. 단숨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넬리 ‘마리옹’! 하지만 ‘넬리  우연한 만남 속에서 반짝이는 비밀을 알게 되는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힘겹거나 견뎌내기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그것을 이겨내고는 한다. 다들 해본 적 있지 않은가. 빨리 부모님의 화가 풀리고 그만 혼이 났으면 좋겠다, 빨리 시험이 끝나고 놀러 갔으면 좋겠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따위의 시시콜콜한 상상들 말이다. 이런 경향은 유아기에 더 두드러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쁘띠 마망>이 그려내는 유년의 세계는 다르다. 이야기의 주된 화자로 등장하는 넬리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어머니의 우울이라는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모든 일이 해결된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과거로 돌아가 자신과 같은 나이의 어머니를 마주하고, 그를 마치 친구 같은 이름으로 불러주고, 그에게 따스한 포옹을 해준다. 그 과정에서 서로 얻게 되는 위로와 치유는 덤이다. 셀린 시아마 특유의 여성주의적 공감이 가족영화의 이야기와 판타지의 플롯을 만날 때야 비로소 가능한 연대일 것이다.

영화는 장편영화라기에는 매우 짧은 축에 드는 72분의 러닝타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길이가 이처럼 짧다고 해서 영화를 조금 길이가 늘어난 단편쯤으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영화는 오히려 두 소녀가 함께 보낸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을 함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불필요한 잔가지를 모두 쳐내고 꼭 필요한 것만 담아낸 밀도 높은 한 편의 시에 가까운 탓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쁘띠 마망>이 이전까지 셀린 시아마가 연출한 장편 영화들과 가지는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그 차이점은 감독의 바로 이전 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비교해볼 때 확연하게 드러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장면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철저히 계산된, 말하자면 교과서적으로 고안된 장면들이다. 물론 이러한 주제의식과 애티튜드의 반영은 영화를 만듦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고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그토록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썩 훌륭하고 잘 만들어진 작품이 맞다. 그러나 해당 영화에는 '쉴 구간'이 없다. 서사의 전개와 주제의식의 투영이 너무나도 촘촘하게 짜여 관객들의 눈에 들어오는 탓에 자칫 관객들이 피로해질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뿐만이 아니라 <톰보이>나 <걸후드>와 같은 그의 연출작 대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문제 아닌 문제'였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간단한데, 언급한 그의 영화 속 문제는 말하자면 '지나친 완벽함'에서 나온 문제였던 탓이다. 혹자는 이러한 영화의 촘촘함을 그다지 영화의 흠결이라 느끼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오히려 시아마의 영화가 가지는 장점이라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덧 자신의 대표작이 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거치고 <쁘띠 마망>에 들어서면서, 셀린 시아마 역시 이러한 지나친 영화의 촘촘함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셀린 시아마는 이번 영화에 이르러서 필자가 앞서 언급한 문제의식을 대부분 받아들이고 그것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방식으로 성찰해낸다. 그는 이전처럼 모든 시퀀스에 타이트하게 주제의식을 담아내기보다는 때로는 스쳐가는 시간처럼 장면을 흘려보내고 우리 삶의 특별한 나날들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 가장 멋지고 중요한 방식으로 힘을 주어 그 순간을 꾸며낸다. 그 선택은 적중하여 결과적으로 <쁘띠 마망>은 셀린 시아마의 '갱신된 최고작'이 되었다.

영화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치우기 위해 방문한 어머니의 옛 집에서 어머니 마리옹의 우울에 슬퍼하던 딸 넬리가 모종의 판타지적 계기로 인해 과거 자신과 같은 나이이던, 유전병으로 인한 다리 수술을 사흘 앞둔 8살의 마리옹과 만나 며칠을 보내며 친구가 된다는 단순한 줄거리를 띠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줄거리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기보다는 영화 내에서 시아마가 우리에게 준비해둔 감정적 디테일과 그것을 쌓아 올리다가 터뜨려내는 연출의 방식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 디테일 중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음악의 활용이다. 앞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결말부에 적절히 활용해 찬사를 받았던 감독은 이번에는 넬리에게 '미래의 음악'을 들려달라는 마리옹의 물음에 'La musique du futur(미래의 음악)'라는 직관적인 제목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화답한다. 서로가 아이들의 꿈에 대한 가사를 음미하며 음악과 함께 전개되는 넬리와 마리옹의 마지막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우리는 그간 고조되던 감정선이 순식간에 폭발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음악을 통한 이러한 감정의 폭발은 그의 이전 작들에서도 종종 시도되었던 연출 방식이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장면 간의 완급조절에 성공한 이번 작품에서는 보다 극적으로 와닿는다.

넬리와 마리옹이 보내는 마지막 밤에 넬리가 마리옹을 상상 속 흑표범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침대 아래에서 밤을 지새우는 장면 또한 특기할만한 장면 중 하나다. 현재의 시점, 그러니까 어머니 마리옹은 밤에 넬리를 재우는 과정에서 자신도 어렸을 때는 침대 아래 보이는 그림자가 흑표범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웠다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것을 과거로 돌아간 넬리가 그대로 기억하고 지켜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다 보면 우리는 단순히 우리의 윗 세대이며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어른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상상 속에서 비슷한 두려움을 겪으며 같은 시간을 거쳐 성장해온 존재들임을 깨닫게 된다. 생각보다도 우리는 부모라고 하는, 그 윗 세대의 사람들과 많이도 닮아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부모와의 닮음이라는 모티프를 녹여내는 과정에서 시아마는 잊지 않고 가부장제에 대한 재전유의 시도를 하기도 한다. 작중 몇 차례 직접 출연하지는 않으나 외할머니의 집을 치우는 주역으로 등장하는 넬리의 아버지가 "나 역시도 두려운 게 있었단다."라며 논한 대답이 "난 아버지가 두려웠어."였던 것을 보자. 이는 과거 굳건히 존재했던 가부장적 권위와 그것으로부터 조금이라도 탈피하고자 노력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마리옹이 넬리를 위로하며 "이미 내 마음속엔 네가 있거든"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많은 관객들에게 가장 눈물겨운 장면 중 하나로 다가왔을 것이다. 두 모녀의 시간도 논리도 거스른 여정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 서로의 부분집합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관계라는 게, 가족이라는 게 다 그런 게 아니었을까. 너의 속에는 내가 있고, 또 내 속에는 네가 있는 것. 어쩌면 우리는 그런 따스한 피로 어우러져 있는 것만 같은 관계를 혈육이라고 부르는 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지점은 넬리가 과거의 마리옹을 만남으로써 가능해진, 어머니를 마치 친구처럼 이름으로 부르는 장면들에 관한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의 한줄평에 "이슬처럼 맺히는 맑은 감동에 엄마를 이름으로 불러보고 싶어 진다."라고 썼는데 영화의 맥락상 매우 어울리는 평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머니로만 대했던,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대했던 한 사람을 친구처럼, 또 어떤 관계가 아닌 그저 한 사람처럼 대하게 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이 장면들은 매우 상징적이다. 마리옹의 어머니, 그러니까 현재의 시점에서는 돌아가신 넬리의 할머니 역시 넬리라는 어머니 이름을 부르고는 순간 어색해하는 것처럼, 어머니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작중 단순한 친근감의 표시 이상의 것으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결말부 현재로 돌아온 넬리가 어머니 마리옹을 다시 만나고 그와 포옹을 나누며 "마리옹"이라 속삭이는 장면은 그토록 뭉클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외에도 영화 내에서 논할 만한 장면들은 7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많다. 할머니와 어린 어머니와 시간 상으로라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딸이 한 곳에 모여 삼대의 생일 파티를 하는 모습, 크레이프를 만드는 마리옹과 넬리, 연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 등 많은 장면들이 그렇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감독은 단 한 차례도 가족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넬리라는 소녀를 위해 자신과 꼭 닮은 과거의 어머니를 만나게 해 준다는 기적 같은 판타지적 선물을 건네준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시네마적 역할은 다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미래의 상상이라는 도피가 아닌 과거로의 여행을 통한 성장을 내딛게 해 주기에. 이는 여성 영화이자 가족 영화이며, 또 판타지 영화인 <쁘띠 마망>이 지니는 크나큰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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