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임스 건 (2021) 리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2021)
감독: 제임스 건 출연: 마고 로비, 이드리스 엘바, 존 시나 외
별점: 3.5/5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영화를 감상하셔야 이해가 가능한 서술이 있으므로 가급적 감상 후에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공공의 적을 함께 섬멸한다 해서 적에게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륜마저 거스르는 최악의 악당들에 대적한다고 악당이 영웅으로 변모할 수도 없다. 제임스 건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리부트작인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히어로와 빌런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실패한 전작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그는 캐릭터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악당임을 부정하려 들지 않으며, 오히려 몇 번이고 강조한다. 영화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제목을 강조하는 관사 THE 하나만을 붙임으로써 전작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데 성공한다. 제임스 건 특유의 끔찍발랄한 B급 감성과 뇌수와 유혈이 낭자하는 R등급 액션은 덤이다.
아예 스쿼드 결성 과정을 생략할 정도로 비슷한 전개로 시작되어 작전에 투입되는 초반부 스쿼드 1팀의 해변 상륙 오프닝 시퀀스는 가장 관객의 뇌리에 남을 만한 장면이며, 동시에 가장 영리한 연출이기도 하다. 제임스 건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스쿼드 1팀을 전작과 차이점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유사하게 그려내고는 영화 시작 10분도 되지 않는 시점에서 전멸시켜버린다. 이는 마치 “전작의 실패는 모두 처리했으니 이제 마음 편히 새로운 자살 특공대를 목도하라”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전작의 유일한 건질 거리였던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만은 유일하게 살려내어 새로운 스쿼드에 합류시키는 전략 역시 일품이다. 이처럼 영화는 전작을 완전히 단절시켜버리면서 동시에 재활용할 수 있을 캐릭터와 모티프들만을 체리피킹하여 새롭게 출발한다. 진정한 의미의 ‘리부트’인 셈이다.
그러나 영화가 후반부로 넘어가고 스타피쉬 프로젝트의 배후에 미군이 있었다는 비밀이 밝혀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피스메이커가 아만다의 끄나풀이었음이 밝혀지고 군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려는 릭 플래그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그와 싸우다가 사망하는 걸 목도한 다른 스쿼드원들은 자신들의 스쿼드 활동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들은 모두 민간인 학살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적국의 피해는 미국의 이익이라는 망언까지 퍼붓는 아만다의 지시를 무시하고 대열을 이탈하여 스타피쉬를 직접 막으려 드는 진짜 ‘자살 행위’를 시도한다. 자살행위를 통한 성장이라니, 이처럼 '수어사이드 스쿼드'에게 어울리는 성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그들을 그 자리에서 제거하려 드는 아만다를 제지하는 통제실 직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륜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선의를 느낄 수도 있고 말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또 다른 요소는 그간 여러 영화들에서 이도저도 아니게 변질되어 온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의 캐릭터성 복구였다. 조커와의 불건강한 연애와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로 그려지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한 명의 주체로 완전히 탈바꿈하여 “다음 번에 만나는 남자는 조금의 이상한 낌새라도 느껴지는 순간 내 손으로 죽이기로 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또한 그는 자신을 구원하는 데에는 다른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를 탈출시키려는 스쿼드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스스로 탈출을 감행하여 성공하기까지 한다. 할리 퀸의 캐릭터는 스타일적인 면에서도 진보했는데, 탈출 시퀀스에서의 다채로운 액션과 그가 보는 환영과도 같은 애니메이션이 액션 곳곳에 녹아드는 연출은 가히 스타일리쉬함 그 자체였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곧 이어질 새로운 DC 유니버스 영화에서 활약할 할리 퀸 캐릭터의 초석을 닦으려 시도한 것으로 보이며, 그 시도는 결과물을 보건대 썩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보다 더 훌륭하기 어려울 정도의 B급 오락영화이며 악인들의 내적 성장을 나쁘지 않게 그려낸 피카레스크물이다. 끔찍할 정도로 깜찍한 연출과 사람에 따라 충격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의 비도덕성으로 인해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빌런의 안티 히어로화를 잘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그간 몇 차례의 작은 성공을 제외하면 실패만을 거듭해왔던 DC 유니버스의 영화들을 생각하자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영화다. 이제 이 영화를 초석으로, DC의 영화들이 수퍼히어로 유니버스의 영역에서 어떤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될지 앞으로를 기대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