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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Dec 01. 2022

우리를 향하던 총구를 그들에게 되돌릴 때

<장고: 분노의 추적자>, 쿠엔틴 타란티노 (2012)

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2)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제이미 폭스, 크리스토프 왈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캐리 워싱턴, 사무엘 L 잭슨 

별점: 4.5/5

1850년대 미국 남부, 현상금 사냥꾼인 닥터  슐츠에게 도움을  대가로 자유를 얻게  흑인 노예 장고. 그는  슐츠와 함께 현상금 사냥꾼 일을 시작한다. 매일 무섭게 사냥 기술을 연마하는 장고의 목표는 오직 하나, 오래전 다른 곳의 노예로 팔려간 아내를 찾아내 구하는 것이다. 장고는 집요한 추적 끝에 아내가 악덕 농장주 칼뱅 칸디의 손에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고 그의 농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의 탈출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는데


보안관, 현상금 사냥꾼, 무법자와 리볼버 권총. 이들은 서부극을 구성함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미국이 만들어낸 최초의 대중문화라고도   있는 서부극은 개척기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무법자와 의인 간의 활극을 다루는 장르이다. 이런 서부극이라는 장르에서 '미국 서부'라는 배경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 무법자에 대한 복수라는 플롯이라고도   있겠다. 이러한 플롯은 이후 시네마의 형성 과정에서  영향을 끼쳤고 실제로 액션과 스릴러를 비롯한 미국 영화 대부분의 세부 장르들이 서부극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서부극의 효시가 20세기  다분히 인종차별적이었던 미국의 사회 분위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있다. 개척지 문화를 중심으로 19세기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대극인 서부극의 세계에서 백인 외의 인종이  자리는 없었고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차지할  있는 배역은 기껏해야 노예나 악역이 전부였다. 그러나 시네마라는 문화는 시대정신과도 깊게 결부되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장르는  아무리 개별 영화의 완성도가 뛰어날지언정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옳을 것이다. 실제로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 비교적  변화가 있었던 70년대를 전후로 서부극은 크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서부극의 쇠퇴를 인종 문제만으로 바라볼 수는 없겠으나 인종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장르의 쇠퇴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쇠퇴하는 서부극의 자리를 할리우드는 빠르게 다른 장르로 메우기 시작했다. 스타워즈로 대변되는 스페이스 오페라, 슈퍼맨, 배트맨 등으로 대변되는 수퍼히어로 물이 대표적이었다.

21세기 하고도 12년이 지났을 , 서부극을 보며 자라는 세대는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B 영화감독이라 칭하며 20세기 할리우드 팝콘 무비의 마지막 수호자가  쿠엔틴 타란티노는  다른 복수극의 실험으로써 서부극이라는 멸종해가던 장르를 시대의 부름에 맞춰 재해석해 내놓는다. 그것이 이번에 우리가 살펴볼 영화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

정작 타란티노 본인은  영화를 미국 서부가 아닌 남부가 배경이기에 서부극이 아닌 남부극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서부극이라는 장르는 배경이 되는 무대보다는 무법자에 대한 복수, 그리고 개척자 정신이라는 플롯과 애티튜드에 의해 호명되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에  영화를 서부극이라고 계속해서 칭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런 애티튜드를 통해 타란티노가 재해석하려  내용에 있다. 1966  동명의 이탈리아 서부극을 오마쥬한  영화는 주인공 장고가 무법자로부터 아내를 되찾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는 형식상으로는 동일하나  내용에 있어 대단히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무대를 남북전쟁 직전의 남부로 옮겨 주인공 장고를 해방된 흑인 노예로 설정한 것이다. 이로써 타란티노는 기존의 서부극이 가지고 있던 개척과 복수라는 장르적 이점을 유지하면서 서부극이 구시대적이라는 비난을 피하는 데에도 멋지게 성공한다.

이러한 성공은 서부극이라는 장르 내부를 떠나 시네마적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기존의 서부극 플롯 속에서 주변인이나 소외받는 계층, 악역 등으로만 소비되던 유색인종이 직접 총을 들고 자신들을 억압하는 백인 노예주들에게 복수한다니. 이처럼 통쾌한 문화적 재전유가 어디 있겠는가. 영화의 원제(Django Unchained)처럼 자신을 묶고 있던 사슬에서 벗어난 장고는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독일인 조력자  슐츠의 도움을 받아 자신과 아내를 따로따로 다른 노예주들에게 팔아넘긴 브리틀 삼형제에게 복수한다. 그는 뒤이어 아내의 행방을 찾아 헤매고 이번에는 아내를 데리고 있는 악독한 농장주인 캘빈 캔디와 캔디랜드 농장으로부터 아내를 사들일 계획을 세우지만 실패한다.  과정에서 조력자 슐츠는 죽음을 맞이하고 기지를  다시 탈출한 장고는 비로소 캔디 일당에게도 복수하고 아내를 되찾는다. 영화는 이처럼 전형적인 서부극의 복수 플롯 내에서 단순히 총구가 향하던 방향만을 돌림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다. 개척자 정신이라는 애티튜드를 무법자들과의 전쟁에서 인종차별 비판이라는 지점으로 돌려놓는 성과는 말할 것도 없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늘상 그래 왔듯이, 그의 일곱 번째 작품인 본 작 역시 극단적인 폭력성과 그 폭력을 통한 쾌락을 추구한다. 그러나 <데스 프루프>에서 과도기를 거치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그의 후기작에는 그 폭력성을 추구함에 있어 한 가지 규칙이 더해진다. 영화가 악인을 벌할 때는 최대한 잔혹하고 무참한 방식으로 선혈과 뇌수가 터지는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만 억울한 피해자나 약자의 죽음을 묘사할 때는 최대한 잔혹함을 덜어낸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영화 내내 반복되는 노예주와 무법자들을 응징하는 장면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무뢰한들은 모두 타란티노가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어려웠을 방식으로 잔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결코 만딩고 격투로 인해 동족을 사살해야 하는 두 싸움꾼을, 도망치려다가 붙잡혀 개떼들에게 물어뜯기는 달타냥을, 캘빈 캔디를 응징하고 샷건에 관통당하는 킹 슐츠를 그런 쾌락적인 방식으로 죽게 두지 않는다. 그들이 죽는 장면은 대단히 쓸쓸하고도 슬프게 묘사되며, 영화는 그런 그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다른 등장인물의 눈으로 연민한다. 만딩고 격투를 보는 킹 슐츠의 굳어가는 표정, 목적 달성을 위해 달타냥을 죽게 내버려 두면서도 떨리는 장고의 눈빛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노예제도를 인종 간의 문제로 확실히  박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인이나 백인 개개인 간의 문제로 혼동하지도 않는다. 단적으로 장고에게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백인 조력자  슐츠가, 캘빈 캔디에게는 자신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흑인 집사 스티븐이 있지 않았던가. 타란티노는 억압받는 이들 중에도 자신의 이익을 노리고 지배층에 아첨하는 이들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지배층 내에도 선의를 가진 인물이 있음을 작중 묘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그의 태도는 결말부 장고의 대사를 통해 함축된다. "이제 모든 검은 친구들은   밖으로 나가시게. 너만 빼고 스티븐,  겉만 까맣잖아."

이외에도 영화에서 특기할 점은 많지만 한 가지를 더 꼽자면 타란티노의 기가 막힌 선곡 능력을 논할 수 있겠다. 분명 19세기 중순의 남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70년대 올드팝, 심지어는 현대 힙합을 배경음악으로 깔고도 위화감이 없는 그의 연출적 능력은 천재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흑인이 주연이 되는 파격적 서부극에서는 음악마저도 더할 나위 없이 파격적인 것이다. 캔디랜드에서의 전투가 시작되고 장고가 총을 뽑으며 울러 퍼지는 릭 로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우리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장고를 응원하게 된다.

영화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플롯에 걸맞게 복수에 성공한 장고의 해피엔드로 끝이 난다. 미소를 지으며 말을 타고 떠나는 장고와 그의 아내 브룸힐다를 보다 보면 우리는 타란티노가 노예제라는 아픈 과거를 안고 있는 흑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화적 선물을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시대정신의 문제 탓에 문화는 때로 알게 모르게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깨닫고 다른 방식으로 재전유하는 일이다. 타란티노의 이번 작업은 그저 총구의 방향만을 돌림으로써 그것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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