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검정치마.
음악에는 신비한 힘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영화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능력. 오랫동안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하고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순간, 술집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은 마치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능력은 더욱 특별하다. 몇 년이 지나도 시간과 상관없이,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뜨거운 장면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재상영되는 것이다.
이런 영화같은 순간을 떠올리자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날이 있다. 4년 전, 내가 처음으로 검정치마를 사랑하게 된 날.
대학을 다닐 때였다. 동기를 따라 놀러간 밴드부 동아리실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일렉을 잡고 있던 친구, 그는 밴드부답게 내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브리티시 팝." 망설임 없이 대답한 나.
"그럼, 검정치마 좋아해?"
"나는 국내 음악은 잘 안듣는데. 밴드야?"
내가 모르는 눈치이자, 그 친구는 잠깐 기다려보라며 일렉을 앰프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일렉으로 시작되는 검정치마의 곡을 튕겼고, 나와 같이 간 동기는 드럼소리를 울렸다. 그 순간,동아리실의 우리 셋이 청춘영화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집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원곡을 들어보기 위해 에어팟을 꽂고 검정치마를 검색했다. 창 밖에서는 수려한 노을이 지고 있었고, 귀에서는 쿵쿵 드럼 소리가 시작됐다. 살짝 찬 10월의 바람에 눈을 살포시 감자, 오후에 들었던 일렉소리가 들렸고 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음악이 있었구나. 이걸 모르고 살아왔구나.
영화보다도 영화같은 순간이었다.
그 날만큼의 전율을 느낄 수는 없지만, 여전히 난 이 음악을 들으면 그 버스 안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일렉을 연주하던 친구와 드럼을 치던 동기를 떠올리던 버스 안의 생각들, 노을과 바람이 어우러져 하늘을 날아다녔던 순간들, 온 감각이 음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던 그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