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명예시민들이 산다.
유독 제주에는 '머무는' 사람들이 많다. 2박 3일, 3박 4일 짧게 여행 온 사람들이 아닌, 오래도록 제주에 머물며 유영하는 사람들. 나는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을 두고, 제주명예시민이라 부르곤 한다.
수학여행, 친구·애인·가족과 가던 여행지가 아닌 새로운 제주의 모습을 접한 것은 스물둘, 비교적 어린 나이었다. 많은 청춘들이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혼자 배낭여행을 다짐하듯, 난 당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를 읽고서 피가 끓어, 혼자 떠나는 3박 4일 제주행 왕복 티켓을 급하게 끊게 됐다.
수소문 끝에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매일 잠을 다른 곳에서 잤는데, 가는 곳마다 나와 같은 여행객들이 드물었다. 퇴직 후 이직하기 전에 꽤 오래 머물다 가는 사람들, 창업을 실패하고 생각을 정리하러 온 사람들, 학교를 휴학하고 한달살이를 시작한 사람들,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축 늘어진 트레이닝 바지와 가슴팍에 'JEJU'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후드티를 입은 채 여러, 혹은 한 곳에 머물고 있었다. 여행객도, 제주시민도 아닌 사람들이 넘치는 제주, 내가 몰랐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돌아가는 티켓이 없었다.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에 시간을 뺏기기보다는, 기존의 일상을 잊고 그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호기심이 들었다. 어떻게 이 여행지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며 떠돌고 있을까. 어떤 매력이 있을까.
그렇게 여행 3일째, 나는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취소했다. 언제 돌아갈지는 정할 수 없었다.
제주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머문다'는 것은,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잠깐 충전하고 가는 것이 아닌, 온전한 쉼. 우리끼리만 아는 오름에서 오는 고요, 매일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하늘, 언제 보아도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남해, 매일 스쳐 지나가는 새로운 인연들에서 오는 설렘, 청춘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그 곳, 제주에 있었다.
결국은 내가 서울에 돌아왔듯이, 그렇게 머물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결국 각자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여러 가지 현실에 부딪혀 제주에 뿌리내릴 수 없었던 것은 맞지만, 머물었던 그 시간들은 여전히 내게 큰 힘이 되곤 한다. 우리가 힘들 때 따뜻한 흰 밥과 고기가 듬뿍 담긴 김치찌개가 있는 고향의 어머니를 찾듯, 제주명예시민에게는 고향 말고도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고향을 품고 살듯, 제주명예시민들은 그렇게 제주를 두 번째 고향처럼 품고 산다. 지칠 때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제주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한 번 더 일어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