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면, 그것과 함께한 어떤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향기에도 이와 비슷하면서 조금은 다른 힘이 있다. 바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힘, 길을 지나다 오랜만에 맡은 전 애인의 향수에 사랑했던 그 시절이 통째로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평소에 향수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 향수를 선물하고 싶어, 혜화의 한 매장에 다녀왔다.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다. 꽃 계열은 그 향기로움이 너무 과해서, 숲 향은 취향이 아니라서, 비누향은 샴푸와 다를 바 없어서. 그녀는 수없이 많은 향수들을 들어보기만 하고, 제각각의 이유로 다시 가져다 놓았다. 그녀는 내게, 그 예쁜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큰 수확 없이 매장을 나오려던 찰나, 마주 잡은 손에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향기가 갑자기 코 끝을 스쳤다. 뒤돌아볼 것도 없이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였다. 향수 없이도,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우린 그 매장을 나와 뜨거운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혜화거리를 계속해서 걸었다. 연극거리에서도, 마로니에 공원에서도, 성대입구에서도, 발이 닿는 모든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훗날 나는 어떤 향수에서가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향기에서 이 사람을 떠올리겠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