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나는 마음 불편한 짐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오래된 그림들을 발견했다.
졸업을 한 후, 방황하는 마음을 정리하며 그린 그림들
취업을 한 후, 회사일에 치이며 틈틈이 그린 그림들
퇴사를 한 후, 이직을 준비하며 취미삼아 그린 그림들
생각해보면 나는 딱히 그림에 재능이 있지도 않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왔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믿음 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습관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의 나는 아직 부족하지만 이렇게 한 장 한 장 그리다 보면,
늘 오늘보단 내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게 쌓인 그림은 큰 박스를 하나 가득 채우게 되었고,
월세쟁이가 집을 옮길 때마다 마음 불편한 짐이 되어버렸다.
가지고 다니기엔 너무 쓸모가 없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엔 가슴이 아픈 아주 불편한 짐.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그다지 불편하지도
그다지 어렵지도 않게 느껴졌다.
‘저 종이들은 내가 열심히 노력했던 흔적일 뿐이지 내 꿈 그 자체가 아니야.’
과거 속에 나는 그 상황에 맞춰 늘 열심히 노력해줬고,
그 노력들은 내 손에, 그리고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홀가분하게 버리고, 다시 채워나가면 된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의 나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 테니까.
박스를 열었고, 하나하나 살펴봤다.
정말 좋아하는 그림들 몇 장만 남기고 대부분의 그림은 버리기로 결정했다.
마음 한 켠이 찡해졌지만 왠지 더 잘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근거는 없다.
굳은 믿음과 오래된 습관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