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달고나 Nov 25. 2022

꽃마저 싫을 때

직장인 생활

출근길 5호선.

나름 한적한 호선이기는 하다. 사람에 꽉 끼어서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난 지하철에서 주로 책을 본다.

그런데 며칠 전에 한 중년 여성이 다섯 다발쯤 되는 꽃을 들고 탄 적이 있다.

집에 꽃을 사가는 것인지 그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신문지로 싼 장미와 이름 모를 보라색 꽃으로 이루어진 꽃다발이었다.

그런데 이 꽃들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신문지가 부스럭거리며 주변 사람을 조금씩 건드리기 시작했다.

심하게 밀치거나 한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혹은 자신을 건드리는 물체가 꽃다발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싫은 티를 내면서도 그 여성에게 뭐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불편한 침묵(신문지의 부스럭거림도)과 함께 보내야 했다.

내가 원한 적이 없으니, 내 반경을 침범하는 꽃마저 싫은 순간이었다.

신영복 작가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싫어하는 계절이 여름이라고 했다.

왜냐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36도씨의 난로가 되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게 되는 계절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 때문이 아니라, '존재'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그 순간들이 끔찍하다고 했다.

꽃마저 싫어지는 (만원) 출퇴근길은 그래서 서글픈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없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