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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운 Oct 24. 2021

[캐롤] 마음에 당신이 쌓이는 순간

우리, 눈이 오면 만나요.


 


 어떤 영화는 소란하고 잔인한 세계에서 기적같은 고요를 준다.


 나이를 먹고 생을 사는 일이 전쟁 같아지면서, 작고 사소한 것에 아름다움이나 기쁨을 느끼는 일이 적어졌다. 내가 사는 세상은 늘 외롭고 바빠 타인의 눈 깜빡임과 작은 손짓, 눈길 하나에 설레는 일은 좀처럼 없다. 온 세상이 흐려지며 세계에 단 한 사람만 보이는 특별한 순간이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추억할 만한 연인도 없었다. 지난 몇 번의 사소한 연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난했으며 일상에 깊은 피곤과 짜증을 남기고 끝이 났다. 헤어졌지만 너의 앞날에 무운만을 바라겠다거나 아름다운 추억은 무슨,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빨리 죽어” 정도의 말이나 할 수준으로 처참하게 끝이 났다. 그와 걷던 홍대 성수동 이태원, 싫다.


 살다보니 인생이란 게 그랬다. 그 순간은 무언가 특별하다는 착각에 빠질지 몰라도, 끝나고 보면 그만큼 한심하고 뻔한 얘기가 없는 것이다. 그 관계가 협박이나 루머, 자해 공갈 따위로 끝났다면 더할 나위 없이 뻔하고 너저분한 신파 드라마다. 세기의 사랑도 끝이 나고, 전 세계가 알았던 커플도 언젠가는 지저분한 끝을 맺는다. 어려서부터 자라서까지 한평생 신물 나는 사랑의 끝은 원치 않아도 4DX로 체험해 왔으니, 내게 감성이 남아있지 않은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캐럴>은 내게 있어 꽤 특별한 영화다.


 한 여성이 다른 한 여성을 만나 사랑하다가 사회의 시선과 여러 개인적인 사유로 헤어지게 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흔한 사랑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사랑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애틋하고 특별한 일인지를 몇 번이고 발견한다.




 캐럴과 차를 타고 가다가 터널을 통과할 때 테레즈가 바라보는 캐럴은 유난할 만큼 아름답다. 라디오 소리, 차도를 밟는 바퀴 소리, 엔진 소리가 들리고 옆에는 다른 차들이 쌩쌩 달려대는 온통 소란한 세계 안인데, 테레즈가 캐롤을 보는 순간들은 놀라울만큼 고요해서 곧 눈이 쌓이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다. 라디오 소리 대신 캐롤이 눈을 깜빡이는 소리가 들리고, 캐롤의 손짓과 말투 하나에 마치 평생 살아온 어둠 속에서 첫 빛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를 향해 가지는 덧없이 순수한 애정. 어떤 목적이나 욕망도 덧입혀지지 않은, 첫 눈처럼 흰 사랑을 보면 뭉클해진다.





 터널을 통과해 지난 후 눈이 내리는 거리에서 테레즈가 캐롤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는 그것이 명확한 사랑의 순간임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내 카메라에 영원히 박제하고 싶은 일. 눈처럼 아름답지만 그만큼 쉽게 사라지고 마는 이 순간을 사진이라는 명백한 개인적인 진실 위에 남겨 기억하고 싶은 일.

 

 카메라를 든 사람에게 “찍는다”는 행위는 지극히 어려운 선택이고 다분히 감정을 요하는 일이다. 무엇을 찍을 것이고, 왜 찍을 것인가. 무언가를 찍고자 하려면 그만한 감정이 들어야 하고, 어째서 그것을 찍는 것인지에 대한 이유도 확실해야 한다. 이 순간을 꼭 담아내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함부로 셔터를 누를 수 없다. 순간에 대한 명확한 감정이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머뭇거리게 된다.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이 보급된 지금은 많이 희박해진 감정이지만 필름 카메라를 써 본 사람은 몇 번이고 느껴봤을 감정이라 확신한다. 내게 주어진 몇 번의 기회 중에 하나가 지금 이 순간이 맞나.


 그시고 늘 머뭇거리고 우유부단하기만 하던 테레즈는 눈 내리는 거리에서 캐롤을 발견한 순간 어떤 망설임도 없이 셔터를 누른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이런 것이구나. 그 작고 미묘하며, 다분히 개인적인 순간을 영화의 장면마다 발견하면서 나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사유한다. 이 영화가 놀라운 이유는 사랑의 순간과 이유를 마치 필름 사진처럼 명확히 잡아낸 까닭이다. 관객조차도 그 사랑의 감정에 매몰되게 만드는 깊은 호소력을 가졌다. 테레즈가 백화점에서 캐롤을 발견한 순간, 나조차도 캐롤을 향한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만다. 심도가 극도로 낮은 카메라처럼 다른 모두는 배경일 뿐이고 단 한사람만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며 테레즈에게 있어 캐롤이 어떤 존재인가를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체감한다. 캐롤을 바라볼 때면 세상 어떤 문제도 상관없을 것만 같고, 함께있을 수만 있다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도 달리 중요하지 않은 것만 같다. 단지 이 세상에 캐롤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캐롤에게 발견되었다는 것만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캐롤은 그저 허둥거리며 살기에 급급했던, 살면서 달리 대단하고 유별난 사랑도 없었고, 우유부단하고, 평범했던 사람에게 단 하나뿐인 특별함을 경험케 한다.




 

 그런 밤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사랑을 성가시고 불쾌한 존재로만 느껴왔던 내가 깨닫는 것이다. 사랑은 눈과 비슷해서 영원하거나 내내 아름답지도 않고, 바닥에 쌓이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워지고 성가신 존재가 될 뿐이지만 매해 내리는 눈은 유난히 특별하고 가슴이 설레었다는 것을, 그리고 눈의 최후를 안다고 해서 내리는 눈마저 미웠던 적은 결단코 없었다는 것도. 끝이 허망하고 추악했다 한들 함께여서 웃었던 순간마저 지워지는 것은 아니란 사실도.


 그래서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에 회의감이 들 때면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본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이 존재함을 깨달으며 작은 위안을 얻는다.

다시 사랑하는 일이 없다 해도, 이 다감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걸 느끼면서 눈오는 소리와 함께 잠에 든다.


 그런 밤은 외롭지 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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