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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Oct 24. 2023

공백기 기록

약 한 달간 업로드 못한 이야기

 다시 감량 사이클을 돌리기로 한 뒤, 생각지 못한 일에 생겼다. 


 아내가 많이 아팠다. 유선염은 상상 이상으로 아픈 질환이었다. 산부인과에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끙끙대던 아내의 유선염은 결국 농양으로 번져서, 외과 수술을 받아 배농을 하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모유수유 한다고 고생하고 힘들어 한 아내가 결국 이렇게 아픈걸 보니 자꾸 눈물이 났고, 당분간은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아내를 돌보는데 전념하기로 했다. 


 엄마 몸이 먼저라는 생각에 단유를 결정하고, 이제 우리 집에서 나를 제외한 두 명은 가족은 모두 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시간 속에서, 글쓰기는 불가능했다.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출근 전에는 집에 있을 아내와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하루를 세팅하고, 아내 상처를 드레싱 했다. 다녀와서는 하루의 흔적을 정리하고, 아이와 놀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아내 상처 드레싱하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식단 관리는 사치였다. 집에 가는 길에 아내와 함께 먹을 저녁을 배달식으로 주문해서 함께 먹고 치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건강관리의 결과물을 다시 되돌리기는 싫었다. 내게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 시기를 이겨내야 했고,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은 하루에 두 번, 새벽과 점심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보람차게 써야 했다.






 새벽에는 헬스장도 열지 않는다. 나는 매일 3시 50분에 일어났고, 4시부터 공원을 뛰었다. 천천히, 천천히, km 당 7분 30초 ~ 8분 정도의 페이스로, 아침마다 매일 10km를 뛰었다. 9월 중순부터 이미 새벽은 쌀쌀했고, 아침운동 나오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시간은 점차 늦어져, 다섯 시는 넘어야 보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는 오로지 나의 시간이었다. 천천히 달리면서, 입 다물고 코로만 숨 쉬면서, 호흡에 집중하지 않아도 페이스 유지가 되는 느린 속도로, 약 1시간 20분 정도 뛰면, 10km가 끝난다. 숨이 턱에 차게 뛰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기가 끝나면 바로 진정이 된다. 집에 가서 씻고 출근 준비를 하고, 분유를 바로 탈 수 있게 세팅하고, 아내를 깨워 드레싱을 하고, 집에서 나오면 6시였다. 


 점심에는 헬스장에 갔다. 하반신은 달리기로 충분히 단련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짧은 시간 동안 상체 단련에만 집중했다. 벤치프레스와 턱걸이로 빠르게 근육을 박살내고, 샤워를 하고, 회사 식당으로 돌아와 마감 10분 전에 밥을 받아서 먹었다. 


 퇴근 후엔 쏜살같이 집으로 갔다. 수술 후 아이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있는 아내는, 하루 종일 우울해 있고, 그런 아내를 다독이며 아이와 놀이시간을 가졌다. 하루의 흔적을 재빨리 치우고, 배달 주문으로 온 음식으로 아내와 식사를 하고 나서, 아이를 씻기고, 분유를 먹이고, 재운다. 다행히 아이는 분유로 바꿔도 한 번의 거부도 없이 잘 먹어줬다. 잠도 잘 자고, 단유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없는 게 정말 감사했다. 아직 7개월이지만,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가 너무 고맙다. 잠든 아이를 확인하고 나와서, 아내 드레싱을 다시 해 준다. 10월부터는 이유식을 시작해서, 저녁에 이유식을 만들고, 냉장고에 넣어 놓고, 전자레인지 1분이면 먹을 수 있게 세팅해 놓는다. 빨래를 돌리고, 집 청소를 간단하게 하면, 저녁은 녹초가 되어서 잠이 든다. 그러면 또다시 새벽이 찾아오고, 달렸다.


 이제 아내는 힘든 시간을 거의 다 이겨냈고, 일상을 되찾고 있다. 덕분에 나의 삶도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공백기를 이겨내는 데는 달리기가 정말 큰 힘이 됐다. 달리기는 내게 새로운 삶을 주고 있다. 10월 첫째 주에는, 처음으로 2시간을 달렸다.



 km당 8분의 아주 느린 페이스였지만, 400m 트랙을 37바퀴를 돌았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고, 중반부에는 달리는 게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14km가 넘어간 시점에서는 약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달릴만하다는 느낌에, 목표는 거리에 상관없이 2시간 달리기였지만 15km는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 페이스를 올렸고, 거의 정확하게 시간과 거리를 맞출 수 있었다.






 이 매거진을 처음 시작할 때, 운동은 감량의 수단이 아닌, 관리의 수단이라고 언급했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뚱땡이가 운동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하지도 못하면서, 보상적으로 식욕만 늘어나기 때문에, 살이 오히려 찐다는 것은 과학이다.


 이제 나는, 충분히 날씬하진 않아도, 운동으로 '관리'를 할 수 있는 체력과 신체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다. 매일 달릴 수 있는 체격 조건을 식단 관리로 달성했고, 덕분에 최근 한 달 동안 꽤 나쁜 식단을 이어왔음에도 체중은 증가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같은 기간 동안 식단까지 관리했다면 매우 많은 감량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내의 건강문제는 예기치 못한 것이었고, 아내를 잘 챙기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아쉬워할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이제 건강을 회복한 아내를 보며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시작한다. 이제 공언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고, 나는 아마 최초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꽤 많은 성과를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남은 날짜까지 최선을 다 해 볼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사진을 꺼내본다. 늘 자신이 없어서, 전신을 비교한 사진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아내가 찍어준 사진 몇 장을 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남편이 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건강한 몸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내일은, 최근의 식단과, 운동량을 적어보겠다. 



매거진을 시작한, 23년 5월 4일의 모습


이틀 전, 23년 10월 22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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