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다시 깨닫는 전통음식의 위대함
치앙마이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계획대로, 별로 한 게 없다. 아기와 함께 왔기 때문에 루틴을 잡는 게 중요했고, 이제는 얼추 다른 것을 생각해도 되겠다 싶게 안정된 것 같다.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5시 정도다. 게으르게 살기로 했지만, 몸에 밴 습관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 와서는 수영을 계속하고 있는데, 수영장도 7시부터 열기 때문에 한두 시간 정도는 할 일이 없다. 아기도 자고 있다 보니 불도 켜지 않은 상황에서, 할만한 건 글 쓰는 정도뿐이다.
태국에 오기로 맘먹었을 때, 제일 걱정한 것은 음식이다. 나는 동남아 음식이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정말 좋아한다. 캄보디아는 순수 미식을 위해서만 4일 여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살을 빼는 몸이고, 동남아 음식은 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당도가 아주 높다. 별생각 없이 먹는 팟타이나 똠양꿍에도 매우 많은 설탕이 들어간다. 향신료나 신맛에 덮여 잘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덕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폭식하면 어쩌나 하는 게 이번 치앙마이 3주 살기의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렇게 걱정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 근거를 찾아본 적은 없다. 경험상, 온도가 낮은 고위도 지역 국가의 식문화는 지방 섭취가 많고, 적도 근처 저위도 지역 국가의 식 문회는 당분 섭취가 많다고 느꼈다. 아마 온도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건전한 지방은 베타 하이드록시부티르산을 통한 즉각적인 에너지 생성이 가능하며, 아세토아세트산을 통해 결과적으로 탄수화물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체온을 유지하면서 활동도 하려면 지방 섭취가 늘어야 하는 게 자연스럽다.
더운 지방에서는 땀을 통한 수분과 무기질 손실이 많다. 무기질 손실이 심하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섭취량을 늘리거나 손실량을 줄여야 한다. 당분 섭취로 인슐린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게 되면, 인슐린의 역할인 혈액 내 영양소를 세포로 이동 및 저장시키는 경로가 활성화되면서, 몸은 수분과 무기질을 보존하고, 체내 pH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수분 섭취만으로는 무기질을 잡아놓을 수 없으며, 한 번 탈수가 시작되면 수분을 아무리 투입해도 pH 농도가 깨져서 수분을 잡아놓을 수가 없다. 이럴 때 보통 이온음료를 마시라고 하는데, 당분과 염분, 비타민 등이 모두 함유된 이온음료를 마시는 효과가 바로 동남아 음식의 효과와 같은 선상에 있지 않을까 추론한다. 일상 음식에 당분과 염분이 많고, 라임 등의 식재료를 생활화하면서 비타민, 무기질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더위로 인한 식문화라 해도, 고당분 식이는 몸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치앙마이의 로컬 노상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해결되었다.
치앙마이는 아유타야 왕조였던 방콕과 다르게, 태국 북부 란나 왕조와, 이를 침공하던 미얀마의 식문화가 전승되고 있다. 위 사진은 미얀마식 돼지고기 카레인 껭항레 라는 음식이다. 40밧, 한화 1,500원 정도에 주문하고 음식을 받으니, 두 숟가락질이면 사라질 양이었다.
이건 다음날 또 근처 식당에서 50밧, 한화 1,900원 정도에 주문한 똠얌 수프였다. 다들 여기에 다른 음식들도 같이 먹는 건가 싶었는데, 보통 이런 음식 하나만 먹고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나만 두세 개 더 주문해서 먹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조금 먹고 있었다. 적은 섭취량이 체구를 전반적으로 작게 만들었다거나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다이어터의 시각에서, 절대 건강할 것 같지 않은 음식이 전통음식이라는 것이 의아했는데,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전에, 전통음식은 현재까지 그 문화가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이미 건강한 식단이라 말한 적이 있다. 다만 음식의 그 취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지킬 것을 지킬 때의 이야기다.
우리가 이해하는 동남아 음식은 상업화된 형태였고, 자본주의에 입각한 보편적 1인분에 맞게 서빙되는 것이었기에, 살이 찌는 음식이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던 것이다.
현지의 전통이 이어지는 로컬 노상 식당에서는 1인분으로 매우 적은 양을 판매한다. 과일 스무디는 과일만 갈아서 준다. 별로 달지가 않다. 한국에서 접하던 시럽이 들어간 과일 스무디와는 사뭇 다르다. 저렴한 과일을 충분한 양으로 넣을 수 있기에 맛의 부족함이 없을 것이고, 시럽으로 메꿔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치앙마이는 매우 상업화된 투어리스트들의 구역과, 현지인들의 구역이 구분되어 있는데, 투어리스트들의 구역에서 식사할 때는 로컬 노상과 사뭇 다르게, 양이 적당(?)하다. 만족도는 높지만, 이런 음식을 매일 먹으면 곧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 신기하게, 격조 높게 전통을 유지한다는 고급 식당에서는 양을 굉장히 적게 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전통 음식의 핵심은, 더위를 이기기 위한 당분과 염분 섭취, 그리고 소식이었다. 단편적으로 볼 때 나쁜 식단도, 애초에 식사량이 적으면 타격이 적은 것이다.
이탈리아의 장수마을을 분석한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저당식, 올리브 등 건강한 지방 섭취, 충분한 채소와 적정한 단백질 섭취 등, 기존에 내가 언급하던 것들을 총 망라한 삶을 사는 분들이 많다. 다만 그 사람들은, 그것들을 지켜가면서, 소식까지 한다. 그러면 효과가 배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대식가고, 아직 소식을 할 준비도 되지 않았을뿐더러, 의지도 없다. 언젠가는 해야지 라는 막연한 의무감이 있을 뿐이다. 그런 자세에서 살을 빼기 위해 저탄수 식단, 건강한 지방 섭취 등을 한 것이다.
소식을 한다면, 케토시스가 가져다주는 노화방지 효과 등의 건강상 이점이 배가 된다. 총 섭취량 제한은 그 자체로 오토파지를 유도하는데 탁월하고,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여 체내 스트레스 및 활성산소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 호흡과 수면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섭취량이 적으려면, 활동량이 적어야 한다. 저 노동, 저스트레스 사회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현대 사회는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고, 높은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이다 보니, 높아진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적은 식사를 하기 어려운 사회다. 느린 박자가 부덕으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다이어트와 건강관리는 너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일단 식사량은 놔두고, 먹는 성분부터 조절하는 게 내 방법이다.
언젠가는 나도 여유를 찾고, 느린 걸음과 박자로 살면서, 소식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Slow city라 불리는 치앙마이에서, 느린 걸음과 소식, 저압박 사회와 구성원의 건강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