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필 May 30. 2024

이런 한심한. . . .

   하나뿐인 아들이 지방대를 가야 한다니 그는 분통이 터졌다. 일단 컨설팅이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대학 갈 수 있는지 알려 주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 처먹다니. 게다가 컨설팅인가 뭔가를 하는 놈은 아들놈이 갈 수 있는 대학을 지방대가 아니라 수도권대라고 불렀다. 요새는 인서울이면 다 서울대고 수도권대가 지방국립대보다 인기라는 요상한 말을 나불거렸다. 서연고 서성한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대학 라인을 읊는데 그의 아들이 갈 수 있는 대학 라인은 여편네의 주름처럼 아래로 아래로 처지기만 했다.


   처음 알았다. 대학 가는 방법이 이렇게 요지경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수시 교과는 내신이 안 좋아 불가능하단다. 수시 교과? 내신? 내신이 뭐냐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떠벌리는데 그가 유일하게 알아들은 것은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뿐이었다. 그래서 아들놈의 내신이 어떻냐니까 4점대란다. 4점대? 몇 점이 만점이냐고 물었더니 똥 씹은 표정을 짓더니 아드님은 학교에서 중간보다 약간 위에 있는 정돕니다, 한다. 중간? 이것들이 장난하나.


  그러더니 수시 교과는 불가능하니 수시 학종을 쓰는 수밖에 없단다. 학종? 학종이 뭐냐고 물으니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학생부종합전형이란다. 돈 받은 놈이 감히 짜증을 내? 학생부가 뭐냐니 아들놈이 갖다 바쳤다는 서류 뭉치를 흔들며 아들놈의 고등학교 생활이 모조리 기록된 종이 나부랭이란다. 학생부가 경영학과 일색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학종으로 경영학과나 그 비슷한 과를 지원해야만 한단다. 그런데 수학 성적이 5학기 내내 바닥이라 경영학과를 쓰기에는 많이 불리하단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린가 싶다. 학종으로 써야 하는데 학종이 불리하다? 경영학과를 써야 하는데 경영학과가 불리하다? 돈 받고 하는 소리가 완전 개소리다. 그리고 그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원서를 쓰기도 전에 이미 지원할 학과가 정해져 있다니 뭔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다.


   경영학과? 서울대, 연고대 경영학과 나온 인간들도 넘쳐 나는데 이름도 못 들어 본 지방대 경영학과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겠느냐 말이다.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가는 게 중요하지 과가 뭐가 중요한가. 대학은 간판이다. '어느 대학 나왔습니다' 이러지, '어느 과 나왔습니다' 이러는가? 아들놈은 아직 어려서 모른다. 이런 촌구석에서 촌놈들과 어울리다가는 영원히 삼류로 자기 인생을 조지게 된다는 것을. 지금도 주변에 어울리는 애새끼들 보면 인간다운 놈이 하나도 없다. 수도 없이 혼내고 화내 봤지만 아들놈은 잠깐 잠잠하다가 또 그런 놈들하고만 어울렸다. 지금은 모르지만 나이 들면 알게 될 테다. 삼류 인간들하고 어울리면 자기도 삼류가 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겠지만.


  문득 수능 생각이 났다. 우리 애는 수능을 안 보냐니까 지방 일반고에서 수능을 봐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단다. 거의 불가능해도 우리 아들놈은 가능할 수도 있지 않냐니까 3월 모의고사 성적표라는 것을 들이밀었다. 늘 공평한 아들답게 4가 균일하게 찍혀 있었고 수학에는 6이 쓰여 있었다. 정시로 가도 인서울은 어림없단다. 정시? 수시와 정시? 그리고 오늘 들은 말 중 가장 희한한 말을 덧붙였다. 수시에 합격하면 어차피 정시에는 응시할 수 없단다. 뭣이라? 수시에서 지방대에 합격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럼 수시를 안 쓰면 되지 않냐니 그랬다가 수능을 못 보면 재수를 해야 할 거다, 지금 실력이면 올해는 물론이고 재수해도 좋은 대학 갈 만큼의 수능 성적은 힘들 거란다. 돈 받고 하는 소리가 죄다 힘들다, 어렵다라니 참 돈 벌기 쉽네.


    집에 돌아와서 우선 여편네를 조졌다.


"니가 정신이 있냐, 없냐? 아니, 지방대 갈 성적 만들려고 매달 수십만 원씩 꼬박꼬박 학원비 갖다 바쳤어? 차라리 그 돈으로 적금을 들지. 공부에 싹수가 없으면 차라리 장사를 시키든지! 내가 공부만 시키랬다고? 그거야 성적이 저 지경인지 모르고 한 말이지. 니가 나한테 애새끼 등수를 말해 준 적이 있냐? 학원비가 올랐다, 여름방학 특강비가 얼마다, 그딴 소리만 했지. 그리고 애새끼 성적이 저 꼬라지면 진작 말이라도 하든지! 그랬으면 내가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서라도 공부를 시켰지. 애가 나한테 얻어맞을까 봐 성적 얘기를 못했다고? 에미라는 게 더 정신이 없구만. 그래, 얻어맞는 건 겁나고 애새끼가 고졸이 되는 건 겁 안 나냐? 전교 회장인가 뭔가 한다고 깝짝 대고 돌아칠 때부터 내 알아봤어. 하이고, 전교 회장? 공부도 못하는 게 무슨 전교회장? 우리 때 같으면 창피해서라도 못 나선다. 뭐? 전교회장인 게 학종에서는 유리하다고? 유리해서 지방대냐? 아이고, 안 유리했으면 아주 큰일 날 뻔 했구나야. 찍소리 말고 마지막 기말고사라도 잘 보게 해! 오늘부터 시험 끝날 때까지 휴대폰이고 컴퓨터고 손만 대 봐. 아주 손모가지를 날려 버릴 테니. 너도 애 집구석에 있을 때는 꼼짝도 하지 말고 지키고 있어! 가게에도 나올 필요 없어. 어디 나다닐 생각 하기만 해 봐. 가서 애 불러와!"


    다음으로 아들놈을 조졌다.


   " 집 가까운 대학에 간다고? 야, 이 얼빠진 놈아. 너는 평생 요런 동네에서 살고 싶으냐? 내가 너한테 골백번도 더 얘기했지 않냐? 모름지기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거기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달라. 사는 자세가 다르다니까! 열심히 치열하게 산다고! 그런 거 보고 배워서 성공할 생각을 해야지, 뭐 집 근처 대학? 에라이, 한심한 놈아. 여태까지 쓴 니 학원비 합치면 아파트도 한 채 샀을 거다. 뼈 빠지게 일하는 부모 생각해서라도 그까짓 공부 좀 하는 게 뭐가 힘드냐? 내가 너보고 돈을 벌어 오래, 효도를 하래? 그냥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해? 뭐? 너는 패션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내가 경영학과에 가라고 해서 공부하기 싫었다고? 이놈이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네. 패션? 사내자식이 무슨 패션? 나는 사내새끼가 그런 일 하는 꼴은 못 본다. 그리고 너처럼 귀 뚫고 멋 부리면 패션이 되는 줄 알어? 평생 편하게 밥 벌어먹고 살려고 대학 가는 건데 패션이 돈이 되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무슨 과를 가든 대학은 서울로 가야 한다. 안 그러면 등록금 없어. 니가 벌어서 가든 말든 알아서 해. 대학 안 가도 된다고? 대학 안 가면 니 인생 조지지, 내 인생 조지냐? 한심한 놈. 뭘 좀 열심히 도전해서 이뤄낼 생각은 없고 계집애마냥 맨날 비리비리, 내가 니 나이 때는 세상에 두려운 게 없었어. 나는 니 나이 때 동생들 다 공부시키려고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오줌 눌 시간도 없었어. 너는 맨날 휴대폰이나 끼고 히히덕거리면서 뭐 대학을 안 가도 돼? 어떻게 벌어먹고 살 건데? 다들 돈 벌고 잘만 사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아이고, 공부만 못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생각이라는 게 없구나. 엄마아빠가 새벽까지 가게에서 빨빨거리고 일하는 거 보면서도 모르냐? 그렇게 안 살려면 대학을 가야지! 펜대 굴리고 살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공정한 축의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