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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Sep 28. 2024

고연전이냐 연고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서울대를 못 가고 연세대나 고려대에 갔을 때 좋은 점이 있냐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누군가가 묻는다면 지음이며 영원한 맞수인 서로가 있는 것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라면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정기적인 소모임을 갖습니다. 딸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학생들 두 명과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있는데 한 명은 한국인 남학생, 한 명은 일본인 여학생입니다. 딸이 홀로 고대생 두 명을 담당할 만큼 다부지거나 똑똑한 것은 절대 아닌데 연대 쪽 멤버는 왜 딸 혼자인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아는 것은 구한말 위정척사파처럼 저는 글로벌화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점입니다. 딸이 매 학기 외국인 학생과 룸메이트가 되는 것에 겨우 익숙해졌을 뿐 일본인 여학생이 한국의 정치외교학을 배우러 유학을 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것을 보면 말입니다. 혹시 엄청난 정치적 야망을 가진 학생인가 궁금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셋은 주기적으로 만나 한일 양국의 정치외교에 대한 진지하고 열정적인 토론을 하지는 않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습니다. 청일점인 고대 남학생이 좀 불쌍해 보이는 것이, 혼자 동물 모자를 쓰고 가운데 쪼그리고 앉아 있거나 양쪽의 두 여학생으로부터 꿀밤을 맞는 제스처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여자 상사로부터 핍박받는 신입 남자 사원 같습니다. 소모임마다 궁합의 차이가 있어서 여자들의 다이어트나 남자들의 금연 결심처럼 어떤 모임은 한두 번 모이다가 흐지부지 된다는데 딸의 소모임은 한 학기 내내 만남을 이어가며 서로 지음이 되었습니다.


  연고대는 영원한 맞수답게 서로에게 귀여운 시비와 비방과 조롱을 날립니다. 연세대의 상징은 독수리고 고려대의 상징은 호랑이입니다. 9월 27, 28일 연고전을 앞두고 하루 전날 연세대에서 고려대 학생들까지 함께 하는 합동응원연습(이것도 줄임말이 있습니다. '합응'!)이 있었습니다. 딸이 단과대별 응원위치를 보여 주었는데 노천극장의 절반에는 공과대학, 사회과학대학 등의 단과대 이름이 쓰여 있었고 절반에는 고양이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어딘가 좀 모자라고 어수룩한 표정으로 사지를 벌리고 찍 뻗어 있는 모양새로 보는 사람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형태였습니다. 집사들까지 거느린 귀엽고 도도하고 귀품 있는 요즘 냥이들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이 바보 같은 고양이는 뭐냐니까 딸은 열두 척의 배로 일본 수군을 모조리 무찔렀다는 이순신 장군이 빙의한 표정으로 '고대 애들이지. 걔네들 호랑이 아니고 고양이야.'라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으면서도 재밌었지만 논리적인 엄마답게 물었습니다. 그럼 고대 애들은 너희를 뭐라고 하느냐고요. 딸은 열두 척의 조선 수군에게 몰살당한 일본 수군의 장군 같은 분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참새라고 해. 독수리 아니고 참새라고. 그런데 요새는 치킨이라고 해. 걔네가 연세치킨이라는 응원가도 불러.'      


  9월 27일, 28일 양일 동안 2024 정기 연고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첫째 날 야구는 연대가 졌고 농구는 연대가 이겼고 아이스하키(빙구)는 연대가 졌습니다. 올해 럭비 경기는 사정상 취소되어서 남은 경기는 둘째 날 축구뿐입니다. 2023년까지의 전적을 살펴보면 21승 10무 20패로 요실금 걸린 이가 재채기를 하면 실수하는 것처럼 연대가 찔끔 앞서나 본데 마지막 축구 경기 결과가 어떨지 사뭇 궁금합니다. 유튜브에서 고대 방송국이 중계하는 야구 경기를 보았는데 중계방송하는 학생들의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KBO 중계방송과 맞먹는 실력에다 무엇보다 여학생이 중계방송에 참여한 것이 두바이 초콜릿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참신했습니다. 방송 내내 격앙된 극소프라노 톤의 목소리가 많고 합법적인 편파 방송으로 고대 편을 드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KBO 중계방송을 각 구단에서 저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고 KBO중계는 왜 남자들만 하는지 궁금증도 일었습니다.


 저는 연대생 엄마니까 연고전이라고 하지 고연전이라고 칭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올해는 언론에서 연고전이라고 부르기에 당연히 연대가 대회를 주최하는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올해는 고대가 대회를 주최하기 때문에 연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더군요. 아무도 모르게 부끄러웠습니다. 기성세대가 MZ 세대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규정짓고 그중에는 부정적인 내용도 적지 않지만  자신들이 주최하는 대회 때 오히려 맞수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는 그 배려가 참 기특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반성하고 글의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원래 제목은 '연고전이냐 고연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였답니다.  音音音音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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