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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위시 Sep 29. 2022

예지몽은 희망을 싣고

나는 신기한 꿈을 잘 꾸는 편이다. 특히 임신에 관해 꾸는 꿈은 신기하게 잘 들어맞는 편이다. 우리 커플의 친한 친구 커플 중 하나가 제임스와 샨텔 커플인데, 이 커플 또한 장기간의 난임을 거쳐 현재는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커플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아이의 성별을 알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이다. 캐나다에는 은근히 이런 커플들이 많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지만 말이다. 하하. 어쨌든, 이 친구들이 첫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려주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예지몽 아닌 예지몽을 꾸었다. 귀여운 사내아이와 함께 뛰어노는 샨텔의 모습이었고, 나는 샨텔에게 연락해 너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첫아들을 낳았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샨텔이 임신한 꿈을 꾸었다. 그녀에게 연락하자, 너무 이른 시기라 가족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았다며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워했다. 몇 달 후에는 그녀가 두 남자아이와 놀고 있는 꿈을 꾸었다. 둘째도 아들이었다. 이쯤 되면 내게 신기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하하


재미있는 것은 이게 나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이었는데, 그 일은 2021년 2월에 일어났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꿈에서 내가 임신 중이었다. 사실 생리가 딱히 늦어지지도 않았고, 일어나 보니 약간의 핏자국마저 묻어 나오는지라 임신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지만 내 꿈이 워낙 생생했다. 에라 임신테스트기 하나 낭비하는 것쯤이야 라고 생각하고 믿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저렴한 임신테스트기 하나를 가져다가 시도해보았다.


두 줄이었다.


2020년의 유산 이후, 말도 안 되는 꿈 하나만 믿고 시도했던 임신테스트기 두 줄을, 그렇게도 간절히 원하던 진정한 두줄을 처음으로 만난 순간이었다. 남편도 이미 출근해서 없었고, 나는 친한 단톡방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 올렸다. "이거 진짜 두줄 맞아?" 내가 해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누군가의 확인이 필요했다. 단톡방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내가 얼마나 아이를 기다려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 유산 사실도 알고 있었던 진정한 친구들이었다. 모두들 나와 함께 호들갑을 떨고 싶었겠지만 "침착해"를 외치며 내게 혹시 얼리 임신테스트기가 있는지부터 확인해보라고 했다. 내가 1차로 썼던 임신테스트기는 일반 임신 테스기로, 얼리 임신테스트기에 비해 두줄의 강도가 약했고, 약간 두줄인 듯 아닌 듯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에겐 미리 사두었던 얼리 임신테스트기가 있었다. 얼리 임신테스트기는 기존에 썼던 저렴한 임신테스트기에 비해 진하게 두 줄을 보여주었다. 그제야 친구들이 "진짜 두 줄이네! 축하해!!!"라고 환호성을 올려주었다. 꿈만 같았다. 내가 엄마가 된다니!!! 그토록 간절히 기다려오던 임신이, 세 번의 인공수정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내 몸과 단 한번 성공하지 못했던 착상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니. 나는 감동의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남편에게는 서프라이즈로 알리려고 생각했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패밀리 닥터 연결이었다. 특히 아침에 임신테스트기 두 줄도 보았지만, 약간의 피도 보았기에 안심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더더욱 정확한 검사 결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번 유산을 겪었던 몸이기에 이번만큼은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 조심조심하며 출근을 했다. 패밀리 닥터는 임신을 축하한다며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임신을 하게 되면 HCG라는 임신 호르몬이 나오는데, 임신 초기에는 이 호르몬의 지수가 매 이틀마다 최소 1.66배, 안정적으로는 두배가 올라야 이 임신이 착상이 잘된 임신이라고 보통 여겨진다. 따라서 최소 이틀의 간격을 두고 피검사를 두 번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피검사하는 곳이 가까워 점심시간에 몰래 가서 피검사를 먼저 받고 왔다.


저녁에 퇴근 후에,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에게 얼른 여기 와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 라며 투덜거리며 화장실로 들어오는 남편에게 임신테스트기를 들이밀었다. "어.... 어???" 남편의 어벙벙한 얼굴에 곧 눈물이 고였다. "아빠가 된 걸 축하해!" 나도 같이 울며 남편을 안아주었다. 6년을 기다린 끝에 만난 두줄이었다. 6년을 기다린 끝에 자연임신으로 찾아온 귀하디 귀한 아이였다. 우리는 한동안 얼싸안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남편은 곧 내 몸 돌보기에 들어갔다. 당시에도 나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지난해 과도한 산행으로 유산이 되었다고 둘 다 자책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동량을 줄이고, 가볍게 걷는 것 정도만 하자고 권고했다.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입덧은 없는지, 자신이 도와줄 것은 없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그래도 피검사 결과와 초음파는 보고 난 이후에 안심할 수 있다며 남편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2차 피검사까지 받고 난 후, 병원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첫 피검사 결과 150, 두 번째 피검사 결과 300으로 안정적으로 올라가고 있네요. 임신이 잘 된 거 같아요. 축하해요"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임신 확인하고 그날과 다음날 피가 좀 비쳤는데 괜찮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의사는 "그게 아마 착상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약 30%의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흔한 일이에요. 피가 철철 나는 게 아닌 이상 걱정할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피가 많이 나면 연락하세요."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렇지만 이미 한번 유산을 겪은 나는 쉽게 안심할 수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첫 초음파까지 무려 2주가 넘게 기다리라는데, 그 기다림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너무 빨리 아는 것이 실제로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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